아기 새처럼 짹짹대는 어린 우리 네 자매와 아직 젊으신 부모님이 함께 평상 위 두레상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얘기하며 떠먹던 된장찌개와 진분홍 혹은 노랑 얼룩빼기로 대문 옆에 활짝 피어 있던 분꽃향이 따로 또 함께 어우러지던 냄새가 내 어릴 적 여름 기억 중 한 조각이다.
비오는 날은 또 어떠한가. 처마 끝에서 주룩주룩 떨어지는 빗물과 댓돌 아래 마당에 옴폭 파인 자국을 만들며 튀어 오르는 물방울을 바라보며 먹던 찐옥수수의 구수한 냄새와 비 그친 후 올라오던 외갓집 대청마루 냄새, 젖은 흙내음 역시 그러하다.
아파트에서 나고 자라는 우리 아이들에게 남겨질 여름날의 추억은 무엇이 될까?
집, 학원,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는 셔틀버스, 어디든 한결같이 틀어놓은 에어컨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 아이들은 과연 여름임을 느낄 새나 있을까?
이제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다.
유명 관광지나 해수욕장을 휴가지로 택하거나, 눈을 해외로 돌리는 가족들도 많을 것이다. 푸른 바다와 하얀 파도 부서지는 해변도 좋고, TV 프로그램에서 청춘들이 만끽했던 방비엥의 튜빙도, 어르신들께 감동을 주던 가우스의 건축물도,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도 정말 모두 다 좋다. 나무가 튼튼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성한 잎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튼실한 뿌리가 땅에 깊게 박혀있어야 한다. 세계인으로서의 안목을 넓히기에 앞서 우리 땅에서 느낄 수 있는 일상의 소박한 행복을 아이들 가슴 속 깊이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이 함께 우리 것을 경험하고 몸으로 익히는 즐거움은 얼마나 행복한 추억이 될 것인가? 밭에서 금방 따서 직접 찐 옥수수가 설탕이나 인공감미료 없이도 얼마나 달콤한지, 옷 버릴 걱정 따윈 하지 않고 내리는 비를 맞아가며 아빠와 함께하는 개울에서의 송사리잡이가 얼마나 신나는 지를 아이들이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늘 먹는 간장, 된장, 고추장이 마트에서 파는 게 아니라 콩으로 만든 메주와 천일염, 맑은 물과 고춧가루, 엿기름들로 만들 수 있고 긴 시간을 기다려야 비로소 먹을 수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농촌에서 우리 아이들은 비를 맞고 땀을 흘려도 즐거울 것이다. 그리고 마음속 깊이 우리 땅의 질박한 아름다움과 전통이라고 불리는 소소한 일상이 추억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농촌마을에 대한 정보는 정부 및 관련 단체에서 지원 육성하는 '웰촌(www.welchon.com)' 또는 '팜스테이마을(www.farmstay.co.kr)'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팜스테이에 드는 비용은 대부분 식대 6천원, 숙박비 2만원 내외라고 하니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기분 좋은 여름을 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손님을 맞이하는 농가에서는 모처럼 농촌을 찾는 도시민들이 따뜻하고 푸근한 정을 느낄 수 있도록 오랜만에 찾아온 내 가족을 대하듯 마음 써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황선화 농협이념중앙교육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