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비류백제 神話'에 비하면 우주속 바늘 불과
신화·설화를 콘크리트·철근으로 묻는건 '야만적'
160m 지점의 전망대에 오르면 시애틀 중심가와 올림픽 경기장, 만년설을 이고 있는 레이니어산, 그리고 엘리엇만(灣)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회전하는 레스토랑에선 시애틀의 기가 막힌 야경을 즐기며 식사하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다. 1993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개봉한 로맨틱 코미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에서 볼티모어의 신문기자 애니 역의 맥 라이언이 운명적 사랑을 직감하고 이 도시를 찾아오는 장면에서도 스페이스 니들은 등장한다. 1999년 미국의 도시명소보존협회가 역사적 명소(Historic Landmark)로 지정할 정도로 미국 국민과 시애틀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존재다.
시애틀뿐만 아니라 전 세계 주요 도시에 랜드마크로서의 전망타워가 있다. 도쿄를 방문했다면 누구나 한 번쯤 가보았음 직한 도쿄타워, 2012년 도쿄 외곽에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높은 634m 높이의 스카이트리(Sky Tree), 중국 상하이 마천루를 상징하는 468m의 둥팡밍주(東方明珠), 초고층에서 스카이워크와 번지점프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까지 즐길 수 있는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스카이시티타워와 마카오의 마카오타워, 맑은 날이면 120km 떨어져 있는 나이아가라폭포를 볼 수 있는 캐나다 토론토의 CN타워 등은 여행자들에게도 이미 익숙해진 이름이다. 남산타워로 더 잘 알려진 서울의 N서울타워, 부산 용두산공원의 부산타워, 우방타워로도 불리는 대구의 대구타워 등도 우리나라 주요 도시의 랜드마크로서 존재감을 뽐낸다.
인천에는 전망타워가 없다. 그러나 전혀 아쉽지 않다. 자연 그대로, 저마다 주어진 높이에서, 가공과 인위에 기대지 않고, 상하좌우 본래의 가시각(可視角)만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런 데 없어서 아쉬운 분들이 꽤 있나 보다. 올해 초부터 문학산에 전망타워를 세우자고 주장하는 글들이 지역 유력신문에 잇달아 게재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외부필자의 기고 형식이었으나 이내 편집국 간부의 칼럼으로 지지가 이어졌다. 만약 그즈음 같은 지면에서 유동현 굿모닝인천 편집장의 촌철(寸鐵)의 반박, "문학산에서는 '고고도(高高度)'가 아니라 그냥 미추홀왕국을 세운 비류의 눈높이로 인천을 봤으면 좋겠다"라고 쓴 글을 읽지 못했더라면 참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문학산이 기원전 18년 '비류백제' 건국신화의 발원지라는 건 인천사람들에게는 친숙한 얘기다. 비류왕의 무덤도 이 산 어딘가에 있다고 구전된다. 주몽을 도와 고구려 창업을 이룬 뒤 비류와 온조 두 아들을 이끌고 남하해 백제 건국의 계기를 마련한 '소서노'설화의 무대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선사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특히 통일신라시대에 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사의식 유적까지 발견됐다. 고고학계의 지속적인 연구는 원형 그대로의 문학산성을 제대로 복원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신화와 설화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 이야기를 듣고 전하는 민심이 투영된 결과다. 이 땅을 지키며 살아온 이들의 고난의 기억과 미래 비전이 씨줄과 날줄로 합쳐져 직조된 민족 대서사시다. 물론 시애틀의 스페이스 니들을 나도 갖고 싶다. 그러나 인천이 가진 비류백제 신화에 견주면 광활한 우주 속 한 개의 바늘에 불과하다. 문학산은 아니다. 신화와 설화를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묻어버리고 덮어버리는 것은 야만이다.
/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