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중고에 시달리는 화훼농가
법 시행땐 소비 더욱 위축될 듯
지속적인 수요저변 확대 위해
종교기관·학교·사무실·식당 등
새로운 소비처 개발 필요
가장 고민이 큰 이들이 농수축산업 종사자들이다. 가뜩이나 경기불황과 인건비, 사료값 등 비용증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소비가 더 침체 될 것이라는 우려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국내 음식점들의 농축수산물 수요가 연간 4조2천억원 정도 급감하고, 선물 수요는 연간 2조여원 가량 감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농어업인들은 법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경제 현실을 생각해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농산물은 공산품과 달리 같은 농가에서 생산되어도 품질과 가격이 똑같지 않다. 고품질 농수축산물은 가격이 수십 배에서 수백 배 차이가 날 수도 있다. 처음 김영란법이 논의될 때에 비해 생산원가나 물가가 많이 올랐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정치권에서도 농수축산업계의 특수성을 감안해 개정안을 검토하고 있고, 명절기간에 선의로 주고받는 선물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하거나 식사 5만원, 선물 10만원, 경조사비는 20만원으로 한도액을 상향 조정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화훼농가도 시름이 깊다. 원가상승, 소비침체, 수입 꽃 유입 등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화훼농가다. 김영란법으로 인해 가뜩이나 침체된 꽃 소비가 더욱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우리나라의 화훼 소비처는 난, 화환 등 관혼상제용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경조사용 소비가 전체 화훼소비의 80% 가까이 차지한다. 우리나라에서 꽃은 경제적 가치로 평가받으며 규제의 대상이 된다. 법이 시행되면 5만원 이상의 꽃은 주고받을 수 없다. 승진축하 시 많이 주고받는 난화분, 각종 행사나 결혼식, 장례식에서 볼 수 있는 화환 등은 대부분 5만원을 넘는다. 사실상 꽃을 선물로 주고 받기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양재동 화훼공판장에서도 "꽃은 뇌물이 아니다"라고 팻말을 써 붙인 꽃가게들이 많이 눈에 띈다. "꽃밭을 갈아엎고 떠나야 하나 고민"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최근 양재동 aT센터에서 이색 꽃 콘테스트를 개최하였다. 칠석, 백중 등 불교계가 주요 행사 철을 앞두고 '공양 및 제단장식용 꽃 콘테스트'를 개최한 것이다. 이번 콘테스트는 aT가 주최하여 한국꽃꽂이협회, 한국화훼장식기사협회 등 꽃 장식 관련 주요단체 전문가들이 참석하였으며 '사찰 꽃 공양' 부문과 '제단장식 꽃' 두 부문에 대해 꽃 작품을 출품하였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콘테스트에서 선정된 작품의 제작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홈페이지에 게시하여 누구나 활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사찰의 종교행사 시 꽃 이용을 확산시키기 위해서다. 불교 신도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교회나 성당을 위한 꽃 작품 행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우리나라 교회와 성당, 사찰 등 종교기관에서는 꽃을 정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꽃 이용문화 정착과 수요 저변 확대를 위해 앞으로 종교단체와 연계한 화훼 소비 활성화 방안을 강구할 계획이다.
김영란법이 화훼농가에 걱정인 것은 당연하다. 경조사용에 그치지 말고 일상생활 속에서 꽃 소비를 촉진하는 것이 화훼농가를 살리기 위한 가장 큰 과제다. 물론 꽃 소비 확대가 쉽지는 않다. aT도 생활 속 꽃 소비 활성화를 위해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냈으나 단기간에 꽃 소비 증대 효과를 얻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꽃 소비를 확대하는 것이다. 종교기관뿐만 아니라 학교, 사무실, 식당 등 꽃이 필요한 곳을 찾아보자. 무조건 법에 반대만 하기보다는 새로운 소비처 개발도 중요하다. 위기를 아이디어로 뛰어넘는 '역발상의 지혜'가 우리 화훼업계에 필요하다.
/김재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