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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연출가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 여우樂페스티벌의 슬로건이다. 올해로 일곱 번째가 되는 '여우락'은 그간 국악에 뿌리를 두고 있는 축제였다. 전통성과 실험성이 적절하게 공존하는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해서 한국음악의 새로운 성과를 공감하는 축제다.

올해는 달랐다. 다른 장르의 아티스트가 대거 참여했다. 성과도 달랐다. 국악에 대한 이해와 활용은 천차만별이었다. 타 장르의 아티스트 중 송창식과 함춘호가 빛났다. 일반적인 음악으로 봤을 때도 그렇고 특별하게 국악으로 봤을 때도 그렇다. 그들은 국악기를 전혀 사용치 않았다. 오직 기타 두 대가 존재했다. 여기에 송창식의 노래가 합쳐졌다. 이렇게 두 사람이 만들어낸 노래는 과거의 포크송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70년대의 포크음악은 이 시대의 새로운 민요 혹은 민속음악처럼 다가왔다.

K-POP을 들으면서, 세련된 편곡을 바탕으로 한 가창력과 칼군무에 놀랐다. 하지만 늘 '이게 과연 우리음악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대중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우리음악'적인 모습은 무엇일까? 송창식과 함춘호가 하나의 답을 해주고 있었다.

송창식은 국악의 호흡에 익숙했고 함춘호는 보컬의 호흡에 익숙했다. 이렇게 만난 두 사람이 과거의 포크송을 국악적인 노래를 만들고 있었다. 한국적인 호흡이 존재했다. 국악 특유의 미학인 '죄고 품', 곧 긴장과 이완의 묘미가 생생하게 살아있다. 이런 것이야말로 '우리음악'이라 부를 수 있었다.

함춘호의 기타는 달랐다. 요즘 25현가야금보다도 더 국악적이었다. 새로 창작된 국악곡에서 25현가야금이 화성을 채우려는데 급급하기도 하다. 함춘호라는 기타의 고수(高手)는 마치 노래의 고수(鼓手)와 같았다. 그의 기타는 선율이자 장단이었다. 그는 송창식의 노래에 내재된 리듬(호흡)을 찾아냈고 소리꾼의 호흡과 노래를 잘 따라갔다. 아주 이상적인 고수(鼓手) 의 역할을 했다.

국악계에서, 또 여우락페스티벌에서, 이런 송창식의 1970년대의 가요를, 국악기가 중심이 된 보다 더 한국적인 음악으로 만들면 어떨까? 송창식이 부른 '피리부는 사나이'에서의 피리가 꼭 국악기를 의미하는 건 아닐거다. 관악기의 통칭일 수 있다. 피리를 통해서 풍류 하는 즐거움을 얘기하고 있다. 이런 노래에 진짜 피리가 등장하면 어떨까? 진솔하고 또 농염하게, 이 노래가 갖는 가치를 깊게 해 줄 거다. 이런 작업을 통해서 70년대의 포크음악이 이 땅의 민속음악으로 뿌리를 내리게 될 거다.

여우락엔 단골 레퍼토리가 있다. 국악기로 듣는 영화음악콘서트도 좋았고, 클래식이나 재즈분야의 탁월한 뮤지션과의 콜라보도 괜찮았다. 하지만 이런 것의 대부분은 바로 현장에 신기하고 놀라면서 끝난다. 이렇게 탄생된 음악 중 지속적으로 계속 듣게 되는 음악이 얼마인가?

/윤중강 평론가·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