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달랐다. 다른 장르의 아티스트가 대거 참여했다. 성과도 달랐다. 국악에 대한 이해와 활용은 천차만별이었다. 타 장르의 아티스트 중 송창식과 함춘호가 빛났다. 일반적인 음악으로 봤을 때도 그렇고 특별하게 국악으로 봤을 때도 그렇다. 그들은 국악기를 전혀 사용치 않았다. 오직 기타 두 대가 존재했다. 여기에 송창식의 노래가 합쳐졌다. 이렇게 두 사람이 만들어낸 노래는 과거의 포크송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70년대의 포크음악은 이 시대의 새로운 민요 혹은 민속음악처럼 다가왔다.
K-POP을 들으면서, 세련된 편곡을 바탕으로 한 가창력과 칼군무에 놀랐다. 하지만 늘 '이게 과연 우리음악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대중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우리음악'적인 모습은 무엇일까? 송창식과 함춘호가 하나의 답을 해주고 있었다.
송창식은 국악의 호흡에 익숙했고 함춘호는 보컬의 호흡에 익숙했다. 이렇게 만난 두 사람이 과거의 포크송을 국악적인 노래를 만들고 있었다. 한국적인 호흡이 존재했다. 국악 특유의 미학인 '죄고 품', 곧 긴장과 이완의 묘미가 생생하게 살아있다. 이런 것이야말로 '우리음악'이라 부를 수 있었다.
함춘호의 기타는 달랐다. 요즘 25현가야금보다도 더 국악적이었다. 새로 창작된 국악곡에서 25현가야금이 화성을 채우려는데 급급하기도 하다. 함춘호라는 기타의 고수(高手)는 마치 노래의 고수(鼓手)와 같았다. 그의 기타는 선율이자 장단이었다. 그는 송창식의 노래에 내재된 리듬(호흡)을 찾아냈고 소리꾼의 호흡과 노래를 잘 따라갔다. 아주 이상적인 고수(鼓手) 의 역할을 했다.
국악계에서, 또 여우락페스티벌에서, 이런 송창식의 1970년대의 가요를, 국악기가 중심이 된 보다 더 한국적인 음악으로 만들면 어떨까? 송창식이 부른 '피리부는 사나이'에서의 피리가 꼭 국악기를 의미하는 건 아닐거다. 관악기의 통칭일 수 있다. 피리를 통해서 풍류 하는 즐거움을 얘기하고 있다. 이런 노래에 진짜 피리가 등장하면 어떨까? 진솔하고 또 농염하게, 이 노래가 갖는 가치를 깊게 해 줄 거다. 이런 작업을 통해서 70년대의 포크음악이 이 땅의 민속음악으로 뿌리를 내리게 될 거다.
여우락엔 단골 레퍼토리가 있다. 국악기로 듣는 영화음악콘서트도 좋았고, 클래식이나 재즈분야의 탁월한 뮤지션과의 콜라보도 괜찮았다. 하지만 이런 것의 대부분은 바로 현장에 신기하고 놀라면서 끝난다. 이렇게 탄생된 음악 중 지속적으로 계속 듣게 되는 음악이 얼마인가?
/윤중강 평론가·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