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제 속성 자동차와 비슷
미국 등 선진국 2000년이후 감속
한국 경제 수요·공급 모두 문제
40년 고속주행탓 성능저하 불구
운전자 옛날 의식·관습 '그대로'
이념·당리당략에 얽매여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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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경제 전문가들은 경제를 자동차에 비유하길 좋아한다. 워낙 자동차와 한 나라나 글로벌 경제의 속성이 여러 모로 비슷해서다. 많은 사람들이 글로벌 경제라는 자동차가 감속을 시작한 것을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부터라고 여긴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도 차가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미국의 경우 주택 거품과 테러와의 전쟁으로 인한 지출, 그리고 장기 저금리 등 고속 주행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정작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 경제 성장 속도가 눈에 띄게 둔화된 것은 새로운 세기에 접어들면서다. 미국은 2차 대전 후부터 2000년 전까지 매년 2.2%의 성장을 했다. 그 후 지금까지 성장률은 0.9%로 떨어졌다. 빨리 달리던 차가 눈에 띄게 속도를 낮췄다. 일본과 서유럽이라는 자동차는 더욱 느려졌다.

한국 경제라는 자동차도 비슷하다. 우리는 1980년의 정정 불안과 1997년 말 외환위기, 2008년 하반기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이들은 경제 성장이라는 도로에 일시적으로 등장한 돌부리였을 뿐이다. 추세로 보자면 2000년을 고비로 성장이 급격히 둔화됐다. 한국이 본격적으로 경제 성장을 시작한 1962년 이후 이 무렵까지는 연 평균 8.8%의 성장을 지속했다. 하지만 밀레니엄 이후는 그 절반 이하인 4.3%로 추락했다.

미 일간지 '뉴욕타임즈' 선임 경제특파원인 닐 어윈은 지난 8일자 '결론(upshot)' 코너에서 선진국의 경제 성장 둔화 추세를 이렇게 일반화 했다. '지구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생애에 걸쳐 경험한 것보다도 더 길게 이어지고 있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최근 장기화 되는 경기 침체를 1930년대의 대공황(Great Depression)에 빗대 대침체(Great Recession)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성장 둔화만이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중앙은행이라는 운전자들은 한결같이 양적 완화라는 가속 페달을 밟아왔다. 그런데도 자동차는 속도를 내지 못했다. 만일 자동차의 능력 이상으로 주행하려 했다면 엔진이 과열돼 경제는 인플레이션을 맞아야 한다.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글로벌과 한국 경제라는 자동차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글로벌 경제와 관련해서는 총공급과 수요 가운데 어디에 문제가 생겼는지 논란이 분분하다. 외형적으로는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 자동차 성능에 해당하는 문제다. 시간당 노동 생산성은 떨어지고 노동시장에서 빠져나가는 인력도 늘어났다. 고령화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일을 하지도 구하지도 않는 인력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경제라는 자동차의 성능 저하는 성장 둔화를 설명해주긴 한다. 하지만 가속 페달을 지속적으로 밟아도 엔진 과열이 벌어지지 않는 이유는 납득시켜주지 못한다. 그 결과 일부 경제학자들은 총수요 부족을 원인으로 꼽는다. 말하자면 운전자의 의지나 능력이 못 미친다는 뜻이다. 하버드대 총장과 재무부 장관을 역임한 래리 서머스가 2013년 국제통화기금(IMF) 컨퍼런스에 언급해 두고두고 논란이 되고 있는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 가설이다. 총수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케인즈주의자들은 대개 그의 입장에 서서, 대규모 인프라 투자 같은 재정정책을 지지한다.

한국 경제의 경우는 명백히 두 요소 모두가 문제가 되고 있다. 40년 가깝게 무리한 주행을 거듭한 결과 자동차 성능은 현저히 떨어졌다. 하지만 운전자는 고속 질주의 시기의 의식과 관습에 젖어있다. 우리 앞에 놓인 도로에 브렉시트나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과의 마찰 같은 새로운 장애물이 지속적으로 새롭게 등장하는 데도 그렇다. 그저 발을 동동 구르며 가속 페달을 밟을 뿐이다. 그렇다고 자동차가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험한 비포장도로에서 퍼져 버린 자동차를 두고도 자동차를 들여다보기는커녕 옛 이야기나 동승자 탓만 하고 있다. 이념의 덫이나 당리당략에 얽매여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정책 당국이 어디 그보다 더 유능한 운전자라고 할 수 있을까?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