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90년대 앨범속 남편 모습
내 어린시절과 배경 유사 '신기'
최근 개봉 '인천' 지명 영화
스펙터클 재현보다 사진 한장이
되살린 성장의 기억이 더 실감
기쁨·정서, 자박자박 마음 채워

우리 부모는 나들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여름이면 송도해수욕장에 데리고 가서 반나절 정도 머물곤 했는데, 남편의 앨범에서도 그런 사진들이 나왔다. 모래둔치에 쳐진 색색의 바람막이, 안전요원이 앉아 있는 비치 의자, 빼곡히 들어차 있는 피서객들. 어렸을 때 나는 송도해수욕장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바다라고 생각했다. 갑문으로 바닷물을 가둔 해수욕장이라는 사실은 중학생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러고 나서는 내가 해수욕장에 들어가 있는 사이 갑문이 열려서 저 먼바다로 휩쓸려 나가면 어쩌나 걱정했다. 까맣게 탄 아이들, 라면이 끓고 있는 양은냄비, 튜브와 즐거운 웃음. 지금은 가려야 갈 수 없는 곳이어서 그런지 그 여름날의 사진들에 눈길을 두는 시간이 길었다.
자유공원의 백주년기념탑 역시 인천 사람들에게 인기 출사지였던 것 같았다. 그 삼각형 모양의 뾰족한 탑을 배경으로 얼마나 많은 인천의 아이들이 사진을 찍었을까? 장난기 있는 아이들은 그 탑을 기어오르기도 했는데, 나는 정말 아찔한 높이까지 올라간 애를 보고 놀라서 다리에 힘이 풀린 적도 있다. 그때가 지금처럼 동영상 촬영이 가능한 휴대전화와 실시간 유튜브 업로드가 가능했던 시절이었다면 그 장면을 올려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했을 텐데. 그러면 전 세계 사람들이 여기가 어느 도시인지, 공원에 왜 이런 탑이 있는지, 그 탑이 실제로 얼마나 높은지 궁금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장난은 너무 위험하고 따라 해서는 절대 안 되지만.
남편과 나뿐 아니라 인천에서 유년을 보낸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사진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사진이 중요한 건 그것을 보면서 때마다 기억을 갱신하기 때문인데 그러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인천의 그런 기억을 되살리며 그 시절의 감각을 다시 느껴보고 있을까. 물론 이러한 인천에서의 성장에 대해서 우리는 양가적이다. 우리에게 허용되었던 인천의 나들이 공간들은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들의 즐거움, 목적 없는 유쾌함과는 거리가 머니까. 어느 누가 전쟁을 전시하고 있는 곳에서 그런 무해한 기쁨을 느낄까. 하지만 그때 우리의 부모, 인천의 시민으로 자기 몫을 꾸려나갔던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려가고 싶어하고 정성스럽게 사진을 찍어주고 싶었던 곳들이 그런 곳들이었음도 엄연한 사실이다.
최근 개봉한 인천이라는 지명이 들어간 어느 영화와, 그 영화의 어마어마한 제작비에 대한 뉴스를 들을 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그런 스펙터클한 재현이 우리의 이 사진 한 장보다 더 인천의 사람들, 인천이라는 감각에 가까운가? 오히려 우리에게는 이렇게 사진 한 장으로도 충분히 구현되는 세계, 그것이 주는 실감이 더 가깝지 않나. 우리는 같은 인천에 살아도 여전히 서로의 이름은 모르고 앞으로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기념관의 층층계단에서, 공원의 비둘기집 앞에서, 해수욕장의 탈의실 앞에서 한번씩 서보며 성장한 아이들일 것이다. 그러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으리라 믿으며 이 거리를 걸으면 비로소 어떤 기쁨, 어떤 정서가 마음을 자박자박 채운다.
/김금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