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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이름조차 생소한 조지 로메로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제목의 저예산 공포영화를 선보였을 때, 이것이 영화사에 큰 획을 그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개봉관을 못 잡아 변두리 극장과 자동차 극장에서 개봉해야 할 만큼 주목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새로운 장르의 영화 탄생'이라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시체가 무덤에서 뛰쳐나와 사람을 잡아먹는 이 해괴하고 코미디 같은 영화에 젊은이들은 열광했다. 뒤늦게 영화를 본 평론가들은 다큐멘터리 수법으로 사회적 동요와 인종주의, 핵가족의 붕괴, 폭도에 대한 공포 그리고 지구종말 까지, 60년대 후반 미국이 고민하고 있던 각종 문제가 이 영화 한편에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보았다. 공포영화의 장르를 한 단계 높였다는 칭찬은 '덤'이었다.

10년 뒤 1978년 로메로는 속편 '시체들의 새벽 (Dawn of the dead)'을 내놨다. 이때 처음으로 '좀비(Zombie)'라는 용어가 사용됐다. 영화는 쇼핑몰이 좀비들의 공격으로 지옥으로 변하는 과정을 그렸다. 관객은 더 열광했다. 65만달러의 제작비가 투자된 영화는 5천500만달러의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평론가들은 흥행 대박보다 영화의 배경이 소비가 미덕인 시대에 풍족한 소비를 보장하던 '쇼핑몰'이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위기에 봉착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풍자며, 로메로가 의도적으로 사회적·정치적 코드를 영화 속에 집어넣었다고 보았다. 로메로도 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로메로처럼 무명에 불과했던 연상호 감독의 좀비영화 '부산행'이 한국 영화사상 14편 밖에 가보지 못한 '1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시체들이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해치는 이 '재난영화'가 '대박'을 터뜨리리라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사상 유례없는 폭염 덕분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게 이유의 전부라고 하기엔 설득력이 약하다. 외국인들은 한 가족이 모두 영화관으로 몰려 가 피가 난무하는 '좀비영화'를 함께 보는 한국 관객의 독특한 영화취향에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부산행'은 위안도 확신도 보이지 않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안감을 반영하고 있다. 재난때마다 드러나는 정부의 무능함도 적절하게 비판하고 있다. 단순한 오락영화로 볼 수 없는 것도 그런 이유다.

/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