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열
정기열 경기도의회의장(더·안양4)
흔히 의회를 '민의의 전당'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도의원을 통하지 않고 민의를 직접 표출할 방법은 없습니다. 아니, 있지만 대부분은 모릅니다. 평소 온라인 등을 활용해 민원인과 소통해온 저는 의장이 되고 나서 가장 먼저 의회 홈페이지 민원게시판을 열어봤습니다. 그런데 제목만 보이고 내용은 볼 수 없었습니다. 민원 당사자와 민원 내용에 포함되는 제 3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올해부터 비공개로 운영된다는 것입니다. 민원 응대 서비스를 민의의 전당답게 바꿀 필요가 있었습니다. 의장으로서 민원 열람 권한을 부여받고 게시판에 올라왔던 재개발사업 현장을 찾아 애로사항을 들었습니다. 현장에서 도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도민 모두가 행복한 '경기행복시대'를 만들기 위한 본격적 행보가 시작된 것입니다.

의회 홈페이지를 통해 들어온 민원 대부분은 도청이나 도교육청 소관 민원이라 정작 의회 소관 민원은 8%에 불과하고 중복되는 민원도 많습니다. 민원을 제기해도 속시원한 답을 얻지 못해 재차 문을 두드렸다는 얘기입니다. 이전엔 단순히 집행부의 의견을 듣고 인터넷이나 서면으로 답변을 전달하던 것을 '현장 중심'으로 바꿨습니다. 지금은 민원 접수 단계에서부터 전화로 접수 여부와 처리 방법을 상세히 알려주고 필요에 따라 무료 법률 상담같이 활용 가능한 서비스를 안내하는 한편 해당 지역 도의원에게도 민원 접수 사실을 알립니다. 사회적 약자 등은 담당 공무원이 접수 단계에서부터 현장을 방문하고, 도의회 소관 상임위에서도 해결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또 지역상담소와 연계해 해당 상임위와 지역구 의원, 도와 시·군 관계 공무원이 민원인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합니다. 전담 조직인 현장 민원 TF팀도 구성할 예정입니다.

이렇듯 민원 처리 절차를 대폭 개선하게 된 배경에는 제 뼈아픈 경험이 녹아있습니다. 15년 전 어려운 신혼살림에 아끼고 아껴 마련했던 돈으로 첫 아파트를 분양받을 때의 일입니다. 임대 회사에서 주민동의서를 받으면 된다 해서 100여 가구의 분양대책위원장을 맡아 2년여를 좇아 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파트 회사 사장이 분양 철회 뜻을 밝혔습니다. 강력하게 반발하자 서류를 보여주며 집을 비우라는 통보를 받았는데 이유는 '계약 위반'이라 했습니다. 가구주는 저인데 계약자가 아내로 된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법적으로 맞는 내용이지만 회사에선 제가 귀찮은(?) 존재였으니 어떤 식으로든 정리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주민들과 함께 시위도 해보고 공무원과 정치인에게 도와달라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힘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도 몇 시간씩 기다리기 일쑤였고 어렵게 대면하면 무시하고 거지 취급을 하며 모멸감을 줬습니다. 죽을 각오로 단식투쟁을 하며 어렵게 집을 분양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 때문에 저 같은 사람이 찾아오면 얘기를 들어주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문제를 풀어보고자 노력했습니다. 100% 문제 해결이 되지 않아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풀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파트와 관련해 다양한 갈등을 해결해주다 보니 '아파트 전문 해결사'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덕분에 정치에 발을 들여놓을 용기를 냈고 주민들의 변함없는 지지가 저를 '의장'까지 만들어주셨습니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민원을 제기할 때 관공서 문턱은 너무 높았고 정치인들은 너무 멀리 있었습니다. 경험만 한 스승이 없다고, 그러한 시간이 있었기에 의회 민원 게시판에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제 카톡 상태 메시지는 '평범한 사람들의 빽이 되겠습니다'입니다. 저처럼 힘없는 누군가가 힘든 일을 당했을 때 따뜻한 친구가 돼주고, 경기도가 꿈을 이룰 수 있는 삶 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정말 '멋진 의회'가 된다고 믿습니다. 머리와 머리가 만나면 두통이고, 가슴과 가슴이 만나면 소통이라고 합니다. 민원인과 가슴으로 만나며 소통에 힘쓰는 도의회, 민원 하나만 봐도 전국 제일의 광역의회답다는 평가를 받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각종 민원은 저를 정치인으로 키워준 은인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제 제가 보답할 차례입니다. 도민 누구나 답답한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도의회 홈페이지 민원게시판을 떠올린다면 제 꿈은 절반의 성공입니다. 민원(民願)이 곧 민의(民意)며, 민의를 잘 받드는 것이 도의회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정기열 경기도의회의장(더·안양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