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자존감으로 인간에 대한 존중·배려 담겨있어
'아이들 공평한 기회 얻는 도시' 향한 걸음 계속돼야
전례 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오늘에도 구석기 시대부터 이어져 온 폭력, 살인, 학대, 권리 침해 등 인간 존중이나 공존에 대한 기본적인 의무를 저버리는 일은 끊이지 않고 있다.
2012년 기준으로 매년 7천600여만 명의 전 세계 5세 미만 아동이 사망하고 있으며, 출생신고조차 못 해 기본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동은 수천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우리 주변에도 각종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것은 물론 부모 손에 목숨을 잃는 경우까지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동들이 여전히 많다. 자치단체나 각종 기관 및 시설에서 기본적인 '생존'의 조건들을 충족해야 하는 아동들의 숫자와 부모의 사회·경제적 능력에 따라 학습 환경은 물론 다양한 놀이 및 잠재력 발휘 기회의 불평등한 접근 등 '발달'에 필요한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아동들의 숫자는 정확히 파악조차 어렵다. 아동친화도시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바로 이러한 현실에서 출발한다. 모든 아동친화도시는 유엔아동권리협약과 그 협약에 규정된 아동의 4대 권리 즉, 생존, 보호, 발달 그리고 참여 권리의 충족을 위한 노력과 관련된 활동을 전개한다. 사실 '아동친화도시인증' 자체가 모든 과정을 우수하게 통과했다는 '합격증'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미래를 '아동들이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어 보자는 의지와 실현을 위한 구체적 노력의 출발을 격려해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아동친화도시인증'을 준비하는 과정과 사례조사를 위해 프랑스를 방문하면서 계속 생각한 것 중 하나가 '우리의 아동 관련 시설이나 제도는 선진국에 비해 손색이 없는데 만족도에서 차이를 나타내는 이유가 무엇일까?'였다. 결국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발은 아동에 대한 관점의 차이, 본질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관점의 차이였고 그 차이는 존중받아야 할 인격을 갖춘 인간으로 아동들을 대하는 것이었다. 부모와 학교 혹은 보육시설 관계자 사이에 '갑'과 '을'이 교차하는 관계가 아닌 아동에 대한 동등한 책임을 나누어 갖는 관계가 형성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해답은 더 좋은 시설이나 더 정교한 감시체제가 아니라 그것을 운용하고 이용하는 사람에 있었고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에서 비롯된 신뢰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동친화도시 추진 초기과제 중 하나가 아동실태조사다. 정부 차원은 몰라도 자치단체 단위에서 아동 관련 정책수립을 위한 구체적인 실태 조사 자료나 통계가 축적돼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심지어 아동들을 위한 시설의 건축과정에서도 실제 이용자인 아동들의 의견이나 희망을 수렴한 사례 역시 거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드웨어 즉 눈에 보이는 것들에 관한 경쟁력은 탁월하지만, 그것을 이용하는 인간에 대한 고려, 시설과 정책을 인간과 결합해 무엇을 이루어 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우리의 과제다.
현실적으로 낮은 출산율의 극복, 아동뿐 아니라 여성들의 권리 보장 및 양성평등의 강화 등 구체적인 정책목표를 이유로 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동친화도시를 구현하는 것도 이에 못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동친화도시는 (현재의 시민들이) 미래의 시민들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것이며 그 뿌리에는 인격과 자존감을 갖춘 인간으로서의 아동에 대한 인식의 재정립, 그리고 점점 희미해지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 아이들이 공평한 기회를 얻는 도시'를 향한 걸음은 계속돼야 한다.
/강범석 인천 서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