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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1794년(정조 18) 가을, 흉년으로 농사를 망쳐 백성들이 고통에 빠져있는데 경기도의 여러 수령들이 백성들을 돌보지 않고 부정부패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도성에 가득했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이 되자 수령을 신뢰하지 못하는 백성들이 암행어사를 파견하여 탐관오리를 해결해달라고 조정에 간곡하게 요청하기 시작했다. 그 소식을 들은 정조는 11월 초에 젊은 관리들 15명을 은밀히 불러 모았다. 정조는 청렴결백한 젊은 관리로 평가받고 있는 그들을 경기도 전역에 암행어사로 보내기로 하였다. 정조는 이들에게 "수령의 잘잘못을 규찰하고 백성들의 괴로움을 살피는 것이 어사의 직임이다. 비단옷을 입는 것은 그 은총을 드러내는 것이요, 도끼를 지니는 것은 그 권위를 높이려는 것이다" 라며 철저한 조사를 지시하였다.

이 청년 관리들중에 32살의 정약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정조가 정약용에게 조사하라고 지시한 지역은 경기 북부의 적성, 마전, 연천과 삭녕의 네 고을이었다. 정약용은 이곳에 가서 은밀히 조사를 시작하였다. 조사를 하던 정약용은 너무도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직 삭녕군사 강명길과 전직 연천현감 김양직의 부정부패가 일반 수령들에 비해 극에 달한 것이다. 김양직은 마음대로 환곡을 나누어 주어 높은 이자를 받아 자신이 챙겼고, 강명길은 가난한 백성들이 스스로 개간한 화전(火田)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여 자신이 착복하였다. 강명길은 부평부사로 자리를 옮기고도 그 못된 행위를 그만두지 않고 더욱 심한 비리를 저지르고 있었다. 정약용은 이 두 사람의 죄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으니 유배형에 처해야 한다고 정조에게 상소를 올렸다.

정조는 매우 곤혹스러웠다. 왜냐하면 이 두 사람이 자신이 매우 총애하는 관료들이었기 때문이다. 강명길은 자신의 건강을 책임지는 내의원의 태의(太醫)였다. 강명길은 정조의 체질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치료를 전담하다시피 하였다.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몸이 좋지 않았던 정조는 자신의 건강을 지켜준 강명길을 무척 신뢰하였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수령으로 보내준 것이다. 김양직은 정조의 부친인 사도세자의 묘자리인 수원 현륭원의 터를 잡아준 지관(地官)이었다. 부친 사도세자에 대한 지극한 효심을 갖고 있던 정조는 김양직이 잡아준 묘자리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연천현감을 제수한 것이다. 의관과 지관이 고을의 수령으로 임명된 것은 조선 역사에서 매우 드문 일이었다. 이만큼 이들은 정조의 신뢰를 받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정조의 신뢰를 이용하여 엄청난 비리를 저지르며 백성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였다. 정약용은 "법의 적용은 마땅히 국왕의 가까운 신하로부터 하여야 합니다"라며 정조가 잘못을 저지른 이들을 유배형에 처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국왕의 측근이 법을 지키지 않거나 법에 따라 처벌받지 않는다면 다른 관료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요구할 수도 없고, 관료들의 불법을 처벌하여 국가의 법질서를 확고히 세울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정조는 사적 감정을 배제하고 이들을 유배형에 처했다. 최근 대통령의 측근인 우병우 민정수석 문제가 온 나라 국민들의 관심이다. 여러 행태의 배임과 부동산 관련 비리가 분명히 존재하는데 대통령은 그를 해임하지 않고 오히려 감싸고 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200여년 전 정조와 정약용이 다시 태어나 이 모습을 본다면 무어라 할지 궁금하다. 지금 권력자들이 청렴하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부끄러운 것을 부끄럽게 여기었으면 좋겠다. 너무 큰 기대인가!

/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