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상한 일이다. 21세기 개명 천지에 아직도 국왕이 '군림(君臨)'하는 나라가 43개국이라고 지난 9일 CNN이 보도했다. 그들 43명의 왕은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첫째 옛 군주시대 왕처럼 명실상부 국가를 통치하는 군왕이고 중동 10개국이 그렇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935년 건국 이래 81년간 왕권이 2대(代)로 이어졌고 요르단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 오만 아랍수장국연방과 아프리카 모로코도 군주가 실권을 쥐고 있다. 둘째는 금년 재위 70년의 푸미폰 태국 왕처럼 전권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권력을 쥐고 있는 경우, 셋째는 명목상의 상징적인 군왕이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네덜란드 스페인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부유한 나라들이 그렇고 캄보디아와 말레이시아, 아프리카 소국 레소토도 같은 경우다.
영국은 어떤가. '신이여 여왕폐하를 지켜주소서…'가 영국 국가(國歌) 소절이고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와의 연합왕국(UK)뿐 아니라 호주 캐나다 투발루(Tuvalu) 등 영연방 15개국 통합 왕이 엘리자베스 여왕이다. 하지만 기타 유럽 왕들처럼 상징적 존재일 뿐 통치권은 없다. 그런데도 그 상징적인 권위만은 '신이 지켜주는' 여왕답다. 네 번째 경우는 도시국가 바티칸을 통치하는 프란체스코 교황이다. 중동 군왕들 이상으로 권능과 권위를 누리는 종교 황제다. 지난 8일 '생전 퇴위'를 공표한 아키히토(明仁) 일본 왕(83)도 있다. 그러나 일본 국민이 '텐노헤이카(천황폐하)'라 부르고 '살아 있는 신(現人神: 아라히토가미)'으로 받들던 '天皇'은 2차대전 전범인 부왕 히로히토(裕仁)까지고 아키히토는 유약하고 착하기 그지없는 왕이다. 평생 전범국가 일본을 반성해 왔고 식민지 조선에 대해서도 '깊이 반성' '통석(痛惜)의 염(念)' 등 진정성이 농후했다.
15일 종전기념일에도 일왕은 "지난 전쟁을 깊이 반성하며 전쟁의 참화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아베(安倍晋三) 총리는 전쟁할 수 없는 평화헌법을 개정,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바꾸기에 혈안이 돼 있다. 아무런 권능도 없는 일왕은 아베 일당이 패주고 싶도록 미울지도 모르고 전쟁 헌법, 그 험한 꼴 안 보고 떠나고 싶을지도 모른다.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