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뒷산에 고인돌이 많다고 해서 이른바 '괸돌마을'이라고도 불리며 지난 한국전쟁때 단 한차례도 피해가 없을 정도로 이름난 '피난골'이었다. 전란도 피해갔던 이 마을에 몇년전부터 거대한 철탑들이 '쳐들어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올해말이면 산업단지로 들어가는 고압 송전탑이 추가로 들어서게돼 마을 외곽 삼면이 고압 송전선로로 둘러싸일 처지에 놓였다.
●마을 삼면에 송전선=한국전력은 개발이 한창인 파주지역과 LG필립스 LCD 단지 준공에 맞춰 300억여원을 들여 총 연장 11.7㎞에 이르는 34만5천V 규모의 송전선로 공사를 지난달부터 시작했다. 문제가 된 곳은 3.6㎞에 이르는 신파주분기 송전선로로 마을 앞쪽과 오른쪽 지점을 돌아나가도록 설계됐다. 게다가 마을 뒤편에는 15만4천V 고압선이 지나고 있어 결과적으로 전체 마을이 삼면에 걸쳐 고압선로에 갇히게 된 셈이다. 이같은 사실이 지난달말 뒤늦게 알려지면서 마을 주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200여세대 500여명의 주민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뒤 이달초부터 마을 입구에서 천막농성을 벌이면서 송전선로 노선 변경 및 지중화를 요구하고 있다.
김원경(46)대책위원장은 “우리 마을은 6·25 전쟁때 다친 사람도 없을 정도였고 외지 사람들이 피란오는 마을이었다”며 “공사가 시작된 뒤에야 비로소 송전선 공사임을 알았다”면서 한전이 사업추진사실을 숨겼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당장 지중화가 불가능하다면 노선변경이라도 해달라는 것”이라며 “단 몇십m라도 노선을 이전하는 것이 어렵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지중화·노선변경은 불가능=한전측은 시간·예산적인 측면에서 주민들의 요구사항이 무리라는 주장이다. 우선 34만5천V 고압선로의 지중화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기술적으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한전측은 지중화로 변경할 경우 최하 5년이상 시간이 걸리고 추가사업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들어간다고 밝혔다. 노선변경 역시 이미 송전탑 부지에 대한 토지보상이 다 끝나고 착공까지 이뤄진 이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전 관계자는 “이만한 규모의 송전선로를 지중화하는 것은 지하철을 건설하는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사실상 지중화나 노선변경은 불가능하다”며 “관보 등을 통해 지난해 10월 사업추진 사실도 이미 알린 상태”라고 밝혔다.
●LCD 단지 가동차질 우려=마을 주민과 한전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가운데 지난 22일 이 마을 김모(49) 이장이 농약을 마시고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김씨는 송전선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스스로 농약을 마신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이장의 음독사건 직후 양측간 충돌이 우려되면서 송전선로 공사는 현재 전면 중단된 상태다. 이에 따라 올해말 LCD 단지가 준공되더라도 전기공급이 안돼 공장가동이 안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송전선로 건설사 관계자는 “11월까지는 무조건 송전선 공사가 완료돼야 한다”며 “이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LCD단지에 대한 정상적인 전기공급이 어려워진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