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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정학유(丁學游)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를 고쳐 써야 할 판이다. 그는 입추와 처서~상강까지를 가을로 분류한 7월령(음력)에서 이렇게 읊었다. '7월이라 맹추(孟秋)되니 입추 처서 절기로다/ 화성은 서류(西流)하고 미성(尾星)은 중천이라/ 늦더위 있다한들 절서(節序)야 속일소냐…'고. 그러나 올 여름 폭염은 입추와 처서(오늘)까지 침범했고 절서를 속여도 너무 속였다. 7월 더위, 8월 폭우가 상례지만 올 8월엔 비다운 비조차 없이 태양만 이글거린다. 2천명이 더위를 먹었고 숱한 가축과 양식장 어류가 폐사했는가 하면 농작물은 시들고 과일은 화상을 입었다. 폭염에 지친 서민의 삶은 죽을 맛이고 '내 평생 이렇게 오래가는 더위는 처음'이라는 게 노인들의 한숨이다. 한바탕 태풍이라도 스쳐갔으면 좋으련만 그마저도 오지 않는다고 했다.

더위가 멈춰 선다는 처서에도 폭염은 식을 줄을 모른다. 하지만 농가월령가처럼 늦더위가 절서를 속여 봤자 얼마나 더 속이랴. 이미 해바라기가 곳곳에 만발했다는 뉴스다. 중미가 원산인 해바라기는 남미 페루와 러시아에 많고 그 두 나라의 국화(國花)가 해바라기다. 유럽 중부와 동부, 중국 북부, 인도 등에도 흔한 꽃으로 '황금 꽃'이라고도 불린다. sunflower, 우리말 '해바라기(向日花)'는 중국의 '향일규(向日葵:시앙르쿠이)'를 번역한 말이다. 葵는 '아욱 규'자지만 '해바라기 규'자로도 통한다. 일본의 '히마와리'도 같은 '向日葵'자를 쓰고 러시아에선 '빧쏠네츠니크'라는 말이 길어서인지 '쏠레유(soleil), 쏠레유' 한다. 불어의 태양이다. 어느 시인은 '온 세상 모든 생물 중 가장 강하고도 당차고 독한 존재가 바로 해바라기'라고 읊었다. '그 어느 생명체가 선글라스도 끼지 않은 채 감히 태양의 동~서 행로를 쫓아가며 눈싸움하듯 노려볼 수 있느냐'는 거다.

처서를 지나 어서 흰 이슬(白露)이 내리기를 고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백로 추분의 가을이면 자심했던 더위도 까맣게 잊은 채 남성들은 쓸쓸해진다(秋思男)고 했다. 그냥 해바라기 밭으로 달려가 선글라스도 끼지 않은 채 태양과 눈싸움을 벌이는 지독하면서도 신비로운 해바라기 존재나 잠시 존경해 보는 건 어떨까.

/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