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유문화 아닌 일본의 한국 식민통치 유산
한민족 충효사상 폄훼하기 위해 강요한 불순 의도
유족들 악덕 상혼에 시달리고 정부는 수수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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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집에 강아지를 키우는데 식구들이 예뻐하니까 자기도 사람인줄 안다." 모 애견마니아의 전언이다.

반려동물시장이 뜨겁다. 국내의 반려동물 수는 2천만 마리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핵가족화와 고령화, 1인 가구 등이 증가한 때문이다. 경제난까지 겹치면서 애완동물이 사람들의 빈자리를 훌륭하게 메워주고 있는 것이다. 농협경제연구소는 반려동물산업이 2015년 1조8천억 원에서 2020년에는 무려 6조원으로 전망했다. 최근에는 반려동물과 소통하는 동물교감사, 동물매개치료 심리상담사,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등이 유망직종으로 뜨고 있다. 동물장례식장이 점증하면서 동물용 삼베수의 가격도 천정부지이다. 애견들이 자신을 사람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다 싶다.

삼베수의가 우리 고유의 문화가 아니라는 주장은 충격이다. 최연우 단국대 전통의상학과 교수는 삼베수의가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통치 유산이라며 조속한 청산을 주장했다. 근거로 1474년(성종5)에 완성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를 들었다.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이벤트행사인 관혼상례의 경우 고려 이전까지는 일정한 형식이 없어 불교식, 유교식 혹은 지역별, 가문별로 제각각이던 것을 조선정부가 유교교리에 근거해 신분별 표준예법을 확정한 것이다. 곽명숙 박사는 조선시대에 조성된 분묘들의 출토복식 중에서 삼베수의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며 최 교수의 주장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했다.

조선시대에는 왕으로부터 일반 평민에 이르기까지 수의로 최고급의 비단이나 명주 등을 사용했다. 상례(喪禮)란 영원히 이승을 하직하는 고인에게 가족과 친지들이 지극정성으로 치루는 마지막 통과의례여서 사자(死者)를 혼례 때처럼 성장(盛裝)시켰던 것이다. 실학자 이덕무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서 여성 망자의 경우 "예전에는 시집올 때 입었던 옷을 소렴(小殮)에 사용하기도 했다"고 기록했다. 혼례복을 수의로 입는 것을 미풍양속으로 치부하는 등 생시(生時)의 복식을 수의로 사용했던 것이다. 빈민들은 무명이나 삼베로 신의(新衣)를 짓거나 혹은 고인이 평소에 즐겨 입던 옷을 깨끗하게 세탁해서 수의로 사용하기도 했다.

삼베수의가 보편화된 결정적 계기는 1934년에 조선총독부가 제정한 '의례준칙'이었다. "수의는 포목(布木) 등으로 하고 고가의 실크는 사용치 말 것이며 충이, 멱목, 악수 등은 생략해도 무방하다"며 상주들은 상복 대신 완장이나 리본을 패용해야 했다. 총독부는 허례허식의 청산을 이유로 들었다. 당시에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지극정성으로 3년 상을 치르다 파산한 가정이 비일비재했던 것이다. 장례 때 무리할수록 효자절부로 칭송되던 탓이다. 그러나 일제가 삼베수의를 강요한 보다 깊은 뜻은 한민족의 정신적 지주인 충효사상을 폄훼하는 것이었다. 망자들에게 싸구려 수의를 입힘으로써 조상신(祖上神)을 욕되게 해 조선인들의 민족적 자긍심을 없애려는 불순한 음모였던 것이다.

덕분에 중상류층에서 즐겨 사용하던 고급 견직물 수의는 점점 사라지고 대신 헐값의 삼베수의가 국민들에게 확산되었다. 1973년에는 '가정의례준칙에 관한 법률'과 그 시행령을 제정해서 관혼상제 의례절차를 더욱 간소화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병원 영안실이나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는 관행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수의의 기성복화도 촉진되었다. 수의를 장례업체에 전문적으로 납품하는 소규모 납품업체도 처음으로 등장했다. 삼베수의가 장례문화의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삼베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국적불명의 싸구려 수의가 명품인 안동포로 둔갑해 바가지 쓰는 일이 다반사여서 유족들은 악덕 상혼에 치를 덜어야 했다. 장례식장에서 국내산 삼베수의는 거의 사라졌다. 국내 장례산업의 급성장 및 중국 삼베수의 제조업자들이 호황을 누리는 이유이다.

장례산업의 버블화는 국민들이 감내할 수준을 넘었다. 특히 삼베수의는 한국 고유의 정신문화 왜곡 내지 열등감을 조장하는 것이어서 벌써 청산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해방된 지 고희(古稀)가 넘도록 수수방관하고 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던가.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