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일 인권운동가 최창화 목사
조선인차별 투쟁 다룬 이야기
일본인들 직접 연출하고 연기
외국인들에 대한 차별 반성하고
앞으로는 공생 도모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 담겨 있어

그러한 아버지를 이해하는 데 장녀 최선애 씨는 어려움이 많다. 자라난 곳은 후쿠오카의 재일 대한교회로 그녀는 가난 했지만 피아노교습을 받았다. 그 작은 교회는 한국인 뿐만 아니라 알코올 중독 남편의 폭력을 피해온 여성, 적에게 쫓기는 야쿠자 등 사회의 약자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교회 밖으로 활동을 확대한다. 조선인 광부의 유골을 모아서 위령제를 지내고 재일 한국인 참정권을 주장하며 '최창화'라고 정확한 한국어 발음을 내지 않는다고 NHK를 대상으로 1엔의 배상 소송을 제기한다.
그녀는 아버지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를 지원해주는 사람이 일본인인데 적으로 만드는 것은…' 이라고 망설였었다.
그러나 최선애씨 자신도 지문 날인을 거부하고 미국유학을 간다. 그로부터 14년간 영주권을 빼앗겼다. '나'의 마음과 신체를 만들어 주고 사상이나 음악을 키워 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빼앗아 가버린 국가란 얼마나 잔혹한 것인가? 그런 아버지와 딸의 번민을 그린 연극이 '쿄카이, 마음의 38도선'이다.
얼마 전 '쿄카이, 마음의 38도선'이 동경예술극장에서 개최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1984년부터 일본에 근무하면서 필자가 꼭 보고 싶은 연극이었다.
최 목사는 이 연극에서 재일 한국인 차별 김희로 사건(1968년)이 발생하자, 인질들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겠다는 그를 설득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현장으로 향하면서 시작한다.
동경 예술좌(藝術座)의 극작가 야마타니 노리코씨는 "사람답게 살기 위한 권리는 신분이나 국적에 관계없이 인간이면 누구나 갖는 권리라는 진실을 기득권·차별화 사회에 호소해 온 최 목사에 대해 사람들이 알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목사의 역할을 한 일본 배우는 "그의 삶을 관객에게 전달하면서 헤이트스피치에 대한 반대 의사가 전달되기를 바란다"며 "재일동포와 그 역사에 대해 배우고 차별에 반대하는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번 무대에는 음악 감독 겸 피아니스트인 최선애씨를 제외하곤 모두 일본인이다. 그런 일본인들이 재일 동포의 절규를 대변하는 자세는 감동스러웠다.
뜨거웠던 한류 열기가 식고 한때 매우 극성스러웠던 헤이트스피치도 재일 동포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금지법이라는 것이 성립되어 그 기세가 한풀 꺾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헤이트스피치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우리 의원님들의 독도 방문으로 지난 8·15일에는 우익 차량들 시위가 여느 해 보다 더욱 노골적이었다.
우리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성과 지성의 힘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관계를 구축해 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 무대의 모델 최창화 목사는 재일 동포에 대한 인연, 인간의 존엄을 투쟁을 통해 되찾는다는 생각,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편견과 차별에는 열화와 같이 대항했다. 폭력단 2명을 라이플총으로 사살한 한 재일 동포가 도망간 온천여관에서 16명을 인질로 잡고 있는 긴장된 화면을 본다. 1968년 일본을 깜짝 놀라게 한 시즈오카에서 발생한 김희로 사건이다. 그가 호소하는 것은 당시 만연했던 재일한국인에 대한 차별이었다.
그런데 그 역사와 차별에 대해 일본인들 스스로가 인권운동가 최창화 목사의 일생을 소재로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하고 연기를 한것이다. 필자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이 부분이다. 재일동포에 극심했던 차별사회에서도 꿋꿋하게 본연의 인간으로서 주장을 굽히지 않고 살아온 슬픈 운명의 이야기를 일본인이 만들고 연출하고 연기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일본인 연출가, 배우들이 출연하는 다른 연극 들도 본적이 있다.
아키타 지역 극단 와라비좌는 '제비', '쥴리아 오타'를 상연한 적이 있다. 둘 다 임진왜란 때 끌려온 조선 통신사의 부인과 어린 소녀의 일본에서의 삶이 주제다. 이러한 연극을 볼 때면 선량한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반성하고 재일 한국인들과의 공생을 도모하기 위해 지속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멀지만 가까운 사이로 만들기 위해 말이다.
/양계화 주센다이대한민국총영사관 총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