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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1922~2004)

처서 지나고
저녁에 가랑비가 내린다.
태산목泰山木 커다란 나뭇잎이 젖는다.
멀리 갔다가 혼자서 돌아오는 메아리처럼
한 번 멎었다가 가랑비는
한밤에 또 내린다.
태산목 커다란 나뭇잎이
새로 한 번 젖는다.
새벽녘에는 할 수 없이
귀뚜라미 무릎도 젖는다.

김춘수(1922~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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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성장기가 지난 사람은 더 이상 자라지 않듯이 자연의 풀도 '처서 지나고' 성장이 멈춘다. 처서는 뜨거운 시간을 지나온 여름의 끝이며,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의 시작이다. 끝과 시작의 모퉁이에서 사물들이 왔던 곳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저녁, 가랑비가 내렸다. 크든지 작든지, 많든지 적든지, 있든지 없든지 처서 이후에 비를 맞았다. 이제 비를 맞는다고 해서 그것들의 차지가 늘어나지 않을 것이며, 가을빛으로 물들며 떨어져 내릴 것이다. "태산목泰山木 커다란 나뭇잎"도 "멀리 갔다가 혼자서 돌아오는/메아리처럼" 다시 돌아갈 그때가 지금이다. 외롭고 높고 쓸쓸해지는 이 시간 "태산목 커다란 나뭇잎이" 젖어가듯 세상에 당신이 피워낸 '초록의 욕망'도 소리 없이 가랑비에 풀이 죽는다. '귀뚜라미 무릎'까지 차오른 가랑가랑한 죽음을 보면 가야할 길이 그렇게 멀지 않는데,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당신도, '새벽녘에는 할 수 없이' 성장이 멈춘 처서에 들고 있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