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경주(61) (주)석촌도자기 대표이사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내다 팔 제품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창고 안은 휑했다. 사람 발길이 잘 닿지 않아 바닥에는 뽀얀 먼지까지 내려앉았다. 조 대표는 창고 한쪽에 소복이 쌓아놓은 재고품을 매만지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인천시 남동구 고잔동 남동국가산업단지(이하 남동산단)에 있는 (주)석촌도자기. 이 업체는 공장 설비를 모두 개성공단으로 옮겨놓은 터라 개성공단 가동 중단 이후 반년째 제품 생산이 중단된 상태다. 남동산단 본사(공장)에는 총무, 영업, 디자인 등의 기능만 남아있다.
"하나도 손을 못 대고 몸만 덜렁 온 겁니다. 개성공단 폐쇄 책임은 두말할 것 없이 북한이지요. 하지만 우리 정부한테도 서운한 게 많습니다. 통일부 발표 전 '전면 통제만큼은 막아달라, 그게 안 된다면 원자재라도 가지고 오게 시간을 달라'고 간절하게 요구했건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럼, 피해 보상이라도 제대로 해야지요!" 덤덤하게 인터뷰에 응하던 조 대표는 이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석촌도자기는 지난 2007년 허가를 받아 2년간 준비 과정을 거쳐 2009년 5월부터 개성공단에서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했다. 조 대표는 다시 2년 뒤인 2012년 1월 인천과 개성에서 각각 운영하던 공장 설비를 개성 쪽으로 '통일'했다.
도자기는 노동집약형 산업이라 노동자들의 숙련도가 생산성을 좌우한다. 개성공단 입주 이후 적자를 보다가 흑자로 전환된 것은 그해 11월이었다. "한 5~6개월 수익을 냈을까? 그러곤 이듬해 개성공단 문이 막힙디다."
북한은 2013년 4월 개성공단 근로자를 철수시켜 약 5개월간 공장 가동이 멈춘 때가 있었다. 조 대표는 "그때는 잠정적인 조치여서 머지않아 문이 다시 열릴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며 "바이어(거래처)도 기다려줘서 금방 피해를 복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재가동에 들어간 석촌도자기 개성공단 공장은 2014년 6월 다시 흑자로 전환했다. "참 재밌습디다. 2~3년 치 오더(주문 물량)가 떨어지고.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했죠."
조 대표는 한평생 도자기에만 매달렸다. 열아홉 어린 나이에 광주에서 도자기 도매상에 들어가 일을 배웠다. 나중에 독립해 일하다가 거래하던 대리점이 부도가 나 납품대금도 여러 번 떼이는 등 젊은 시절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그가 인천에 터를 잡은 것은 1988년 10월부터 행남자기 경기·인천지역 총판을 맡게 되면서다.
"지금 이 공장(남동산단 본사)을 인수한 게 정확히 1999년 12월 31일입니다. 그 날을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죠.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로 다들 힘든 때였습니다. 유통업을 하는 사람들은 제 심정을 알 겁니다. 내 제품을 만드는 것, 제조업에 뛰어드는 꿈 말입니다."
물론 꿈을 이루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당시 회사는 노사 문제로 심각한 홍역을 앓았다. 또 2000년대 초반부터는 중국의 저가 제품들이 물밑 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개성공단 입주를 고민했던 것도 그때다.

조 대표는 "개성공단에 진출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겠다고 판단했다"며 "북한에는 도자기 원료가 많아 훗날을 대비하려는 목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공장에 유독 남다른 애착을 보이는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개성공단 부지 매입, 공장 설비 등으로 약 120억원이 들어갔다. 또 개성공단에 두고 온 원료, 재고 등을 값으로 환산하면 57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의 피해조사에서 인정된 것은 절반 수준도 못 되는 22억원 가량이다. 이마저도 정부 방침에 따라 피해금액의 70%인 15억9천만원 밖에 보상을 받지 못했다.
개성공단이 2013년 잠정 중단됐을 때와는 사정이 다르다. 언제 가동이 재개될지 기약할 수 없다는 점이다. 조 대표는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푸념했다.
시간이 갈수록 빚만 쌓여가고 있다. 동고동락한 직원들도 추석이 지나면 짐을 싸야 한다. 월급을 주려고 은행에서 빌린 10억여 원이 바닥을 보인다. 조 대표는 "회사는 살려놔야 나중에 이 직원들을 데려올 수 있지 않겠느냐"며 "마음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창고처럼 사무실도 텅 비어있다. 주인 없는 책상 한쪽에는 가지런히 놓인 개성공단 서류철이 보였다. 이 사무실은 조 대표가 운영하는 석촌도자기와 행남자기 총판 직원들이 함께 쓰고 있다. 총판 소속인 한 직원은 "한솥밥 먹던 식구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조 대표는 인천개성공단입주기업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 "개성공단은 남북 교류 협력의 마지막 보루이지 않습니까. 그 어떠한 보상보다도 조속히 재가동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임승재기자 is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