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사한 마음이 들 정도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날이 서늘해지기 시작한다. 요즈음 유난히 주위에 있는 지인들에게 부고가 많이 전해온다.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주는 일은 낯설고 슬프다.
지금은 그런 풍경을 흔히 볼 수 없지만 예전엔 시골에서 초상집의 문 앞에 상을 펴고 밥과 나물 그리고 짚신을 차려 놓는 풍습이 있었다. 망자의 혼을 데려가는 심부름꾼인 저승사자를 위한 것이라 여겨 사자밥이라고도 불렀다. 짚신은 먼 길을 떠나기 위해 마련한 것으로 어떤 경우는 세 켤레를 두기도 하는데 저승사자 둘과 망인을 위한 것이자, 삼혼(三魂)사상의 흔적이기도 하다.
주역에 사람이 삶을 살아가면서 남김 족적인 이력(履歷)에 대해 이야기한 괘가 이괘(履卦)인데 履卦의 맨 마지막에 視履라 하여 그동안의 밟아온 인생이력을 살펴본다고 하였다. 그런데 사람은 신발을 신고 다니며 땅을 밟아가므로 履는 신발이란 뜻이기도 하다.
즉 신발을 보는 것이다. 喪家에서 문전에 마련된 신발을 보면서 사람들은 고인이 그동안 밟아온 길과 앞으로 밟아갈 길을 생각해보기 마련이다. 그동안 신었던 신발을 벗고 또 길 떠나는 신발을 신고…. 이 끊임없는 모든 이들의 여정에 상서로움이 깃들길 바래본다.
/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