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석
이재석 경기도의원 (새·고양1)
아이가 고등학교에 가면 엄마들이 식사 준비에서 해방된다고 한다. 아이가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저녁 식사도 학교에서 해결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아이들을 학교에 남겨 공부시키는 야간 자율 학습(야자)은 많은 이유로 비판을 받아 왔다. 자율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반강제적인 요소가 있다는 점, 학생의 선택의 자유와 충분한 휴식 시간, 건전한 여가를 제한하고 있다는 점, 학생들에게 심한 스트레스를 유발시켜 우울감이나 자살 사고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 등이 주된 이유였다. 2010년 10월 경기도에서는 '학생 인권 조례' 제정으로 학교의 강제 야간 자율 학습을 금지시켰다. 그럼에도 이번에 경기도교육청에서 야자를 폐지하겠다고 하는 것은 그동안 경기도 내 고등학교에서 강제로 야자가 시행됐음을 자인하는 셈이 된다. 그리고 획일적인 야자 폐지는 다음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야자 금지 교육 정책은 공교육을 위협하고 사교육 활성화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지난 해 우리나라 사교육비는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7조8천억 원이다. 실제는 이보다 더 높은 액수가 지출됐을 것이다. 만약 모든 고등학교의 야자가 금지된다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원·과외 같은 사교육에 연결될 소지가 크다. 둘째, 야자 금지 정책은 학교의 정상적 역할과 기회를 상실하게 할 것이다. 학교 야간 자습을 통해 학생들이 좋은 학습 태도와 규칙적 생활 태도 등을 습득하는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 특히 저소득 가정의 자녀들이 입는 피해가 클 수 있다. 가정에 에어컨이 없을 수도 있는데 더운 날씨에 냉방 장치가 갖춰진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봉쇄해 버리는 것은 문제일 수 있다. 셋째, 이 문제가 형평성 차원에서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일명 외국어고·과학고 같은 특목고 학생들은 대부분 기숙사에 생활하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밤 10시 이전까지는 도서실에서 공부하도록 돼있다. 즉 일반고의 야자를 없애는 것이 특목고와의 형평성 차원에서 심각하게 어긋난다는 점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특목고에도 야자 폐지라는 자갈을 물릴 것인가?

이번에 도교육청에서 '비인간적, 비교육적 야간 자율 학습'을 폐지하겠다며 '고교 교육 정상화 협의체'를 구성한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야자의 폐단은 없애고, 학교의 진로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는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도내 모든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획일적으로 야자를 폐지했을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경기도 학생들만 받게 된다. 이런 정책들은 국가적 차원에서 전국적으로 이뤄질 사항이지 특정 지역 중심 교육정책으로 갈 사항이 아니다. 특히 적절한 학습 공간과 사교육 지원이 어려운 저소득층 학생들의 피해가 커질 것이 분명하다.

정책은 항상 선택의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극심한 아킬레스 건을 가진 최선의 정책을 피해 차선을 선택하고,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다.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피해가 갈 것이 자명한 야자 폐지 정책은 기본부터 재고돼야 한다. 동시에 강제로 이뤄지는 자율학습은 없애되 자기 주도 학습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는 전폭적인 지원을 해줘야 할 것이다. 더불어 학교 현장에서 학생과 학부모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었는지 교육감에게 묻고 싶다. 진정한 의미의 자율 학습이 도내 고등학교에서 이뤄지는 것이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는 길이다. '깜짝 쇼' 정책으로 인기영합주의에 치중하는 것이 아닌 경기 교육의 앞날을 생각하는 교육감의 의지 표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교육감의 결단력을 기대해 본다.

/이재석 경기도의원 (새·고양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