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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사드'가 필요하다 말하고
수대에 걸쳐 살아온 사람들은
참외를 분노속에 갈아 엎는다
나는 외삼촌·할머니와 함께했던
풍경들을 슬픔속에서 떠올린다
사람들이 광장에 몰리는 곳 '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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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소설가
그곳에 관한 첫 기억은 메주가 달려 있는 서까래이고 창호지가 발린 문이다. 잠이 들었다가 깼는데 어른들이 싸우고 있었고 누가 누구를 문으로 밀어서 와락 그것이 열리면서 마당이 보였는데, 거기에 또 많은 어른들이 모여 있었던 기억이. 일곱 살인가 여덟 살의 나는 방 한구석에서 졸다가 갑자기 펼쳐진 어른들의 드잡이에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이 많은 친척들이 다 어디서 왔을까 궁금해하면서 마당을 구경했다. 그때 싸운 어른들은 외삼촌들이었고 갈등의 중심에는 대처에 나가 공부할 수 있었던 큰외삼촌과 고향에 남아 노모와 함께 농사를 지어야 하는 작은외삼촌의 상황이 있었다. 그곳 선산에는 내가 얼굴을 본 적 없는 외할아버지가 잠 들어 있었다. 엄마가 배가 아프다고 하면 손을 얹고 오랫동안 문질러주었다는 외할아버지, 사진에서는 갓을 쓰고 조그만 입을 아이처럼 깨물고 있는 외할아버지. 외할아버지가 짓던 산 중턱의 밭은 이제 거기까지 가서 일하려는 사람이 없어서 잡목들이 무성한 버려진 땅이 되었다고 엄마는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것도 없는 게 엄마도 그런 시골이 싫어서 도시로 나왔으니까.

여름이면 그곳에서 외삼촌이 농사 지은 참외들이 박스째 올라왔다. 참외 박스에는 외삼촌과 외숙모 이름이 당당히 적혀 있었고 배앓이만 하지 않는다면 여름밤 내내 먹고 싶을 정도의 다디단 참외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 참외 농사를 짓기 위해 봄부터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다 할머니와 외숙모가 쓰러지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어서 그 참외들이, 달콤한 속살들이 그냥 그렇게 맛있는 것으로만 여겨지지는 않았다. 그것은 그 단맛을 맺기 위해 스쳤을 수많은 손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 손들은 검게 탄 손이고 거칠어진 손이고 도시로 나가지 못했다는 한을 참지 못해 창호지문을 와락 부수고 어디론가 마구 달리기라도 해야 하는 손이었다. 그러면 그런 아들을 다독이며 어서 돌아오라고 손짓해야 하는 손이기도 했고.

세월이 흐르자 외삼촌은 남아서 집안농사를 맡게 된 것에 보상이라도 받듯 수입이 늘었고 양옥집을 짓고 아이들은 모두 도시로 유학을 보냈다. 명절과 집안행사 때 도시의 형제들이 몰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인생의 부침을 한탄할 때 외삼촌에게서는 오랫동안 한곳을 지킨 사람의 안정과 여유가 느껴졌다. 도시의 병원에서 생을 마친 할머니는 임종 직전까지 그곳을 그리워 하셨다. 그곳에 데려다달라고 사정하다가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고는 말문을 아예 닫으셨다는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자근자근 아파온다. 할머니에게 그곳은 무엇이었을까. 한곳에서 80년 넘게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이며 일곱의 자식들을 기른다는 것은, 아흔 가까울 때까지 변함없이 논과 밭에서 일과를 보낸다는 것은, 그곳이 어떤 안식을 주었기에 할머니는 그곳을 그렇게 그리워했을까.

요즘 외삼촌은 군청과 역 광장을 다니며 시위를 한다. 외삼촌이 바라는 것은 무엇을 더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곳을 그대로 내버려두라는 것. 누구는 어떤 평화를 위해 '사드'가 필요하다 말하고 그곳에서 수십 년, 수대에 걸쳐 살았던 사람들은 일상의 평화를 갑작스럽게 깨는 그 누구들의 결정 때문에 출하도 하지 못한 참외를 분노 속에 갈아엎는다. 그곳에 관한 뉴스를 들을 때마다, 나는 외삼촌과 할머니, 그리고 친척과 이웃들이 함께했던 오랜 시간의 풍경들을 슬픔 속에서 떠올린다. 그곳은 나의 조모가 평생을 살다가 잠들어 있는 곳, 외삼촌이 평생에 걸친 노동으로 마침내 다디단 결실을 맺어낸 곳, 고향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분노하며 광장으로 나오는 곳. 경상북도 성주군이다.

/김금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