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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9월 19일 오전 6시 20분, 하의가 벗겨지고 목이 졸려져 있는 이모(71)씨의 시신이 화성군 태안읍 안녕리에서 발견됐다. 하지만 5일전 5명이 사망한 '김포공항 국제선 대합실 폭발사고'와 다음날 개막하는 아시안 게임에 묻혀 이 사건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당시 경인지역 유일 종합지였던 경인일보에도 이 사건은 한 줄도 보도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에서 그녀가 연쇄살인사건의 서막을 알리는 첫 희생자일거라고 의심한 사람은 더 더구나 없었다.

'선보러 집 나갔던 處女 水路에서 알몸 變屍로…. 23일 오후 2시 30분께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콘크리트 용수로 내에서 박모(25) 양이 벌거벗긴 채 숨져 있는 것을 근처에서 콩을 뽑던 윤모씨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는 기사가 9월 24일 경인일보 사회면에 2단 기사로 실렸다. 2차 희생자였다. 이때까지도 이 사건이 화성을 넘어 대한민국을 뒤흔들 '화성 연쇄 살인사건'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선을 본 후 행방불명 됐던 처녀가 일주일만에 피살체로 발견됐다. 21일 화성군 정남면 관항리 농수로에서 이 모(21) 양이 양손이 뒤로 묶인채…. 경찰은 지난 9월 진안리 박모양 살인 사건과 동일 범행으로 보고…'. 그해 12월 22일자 4차사건(이 사건 발생 이틀전 3차 사건으로 알려진 주부 권모(24)씨 사건이 발생했지만 시신은 3개월 후 발견됐다)을 비중있게 다룬 경인일보 보도를 시작으로 경찰과 정부, 온 국민들이 이 사건에 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차는 그렇다고 치고, 경인일보가 2차 사건부터 편집국의 역량을 집중했다면 사건의 방향은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 사건이 거론될 때마다 경인일보가 부채의식에 시달리는 것은 이런 이유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다음주가 되면 86년부터 91년까지 10명의 여성이 희생된 화성연쇄 살인 1차 사건이 발생한지 꼭 30년이 된다. 2000년 초 이 사건에 관심을 갖고 경인일보 자료실을 찾았던 봉준호는 이 사건을 재조명한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한국 최고의 감독 반열에 올랐지만, 연 인원 180만명의 수사인력이 동원되고, 3천여 명의 용의자가 조사를 받았던 미증유(未曾有)의 사건은 공소시효가 끝난 지금까지 피해자 가족, 용의자, 경찰, 언론 등에 깊은 상처만 남긴 채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