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 장기불황이 이어지면서 '막가파식' 채권 추심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들 채권사들은 교묘하게 법 테두리안에서 채권추심행위를 하기 때문에 사법기관도 손을 쓸 수가 없다. 애꿎은 서민들은 불과 수십만원의 돈을 연체한 죄로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이 당해야 하는 처지다.
지난달 17일께 정모(44·일용직·여)씨는 딸 박모(13)양의 전화를 받고 집으로 달려왔다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현관문까지 뜯는다=누군가 집안에 침입하려는 듯 현관 잠금장치가 완전히 뜯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정씨는 이웃 주민의 설명을 듣고서야 채권추심원이 왔다갔다는 사실을 알았다.
정씨가 이처럼 '황당한' 채권추심을 당하게 된 것은 지난 2002년 야쿠르트 배달을 위해 소형차 한대를 산 것이 계기가 됐다. H캐피탈사를 통해 36개월 할부로 차량을 구입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뜻하지 않은 사고로 정씨는 일을 그만두게 됐다. 결국 1년이 지난 2003년 6월 4개월분의 할부금이 연체되자 H사는 남편의 봉급을 차압한뒤 강제집행을 통해 1년도 안된 920만원짜리 차량을 단돈 450만원에 팔았다. 정씨는 남은 차값 550여만원을 갚아나갔으나 이마저도 올해초 남편이 실직을 하면서 2개월치 32만여원을 연체했다. 결국 H사는 32만여원때문에 '강제집행'에 나선 것이다. 정씨는 “다른 곳에서 대출받아 원금과 이자를 일시에 상환하고 싶어도 이미 차와 집, 봉급 등 모든 재산에 가압류를 걸어놓아 그것마저 불가능했다. 할부로 차를 산 것이 온 가족에게 악몽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눈물을 흘렸다.

▲사람 찾는데는 신출귀몰=3년전 빚보증을 잘못 섰다가 신용불량자가 된 A(28)씨는 H사로부터 대출을 받아 중고차를 산 게 문제가 되자 아예 잠적했다. A씨의 가족들도 3년동안 이곳저곳을 수소문했지만 끝내 A씨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최근 A씨가 교통사고로 입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족들과 극적인 상봉을 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H사는 이미 A씨의 소재를 파악해 꼬박꼬박 월급을 차압류해가고 있었다. 그것도 몇차례 직장을 옮길때마다 '귀신같이' A씨를 찾아냈다. A씨의 가족들은 “가족들에게도 소식을 끊고 살았는데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직장생활하는 것을 알았는지 의문”이라며 “항의를 하자 캐피탈측은 그저 전화번호부에 나온 모든 회사에 알아봤다고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채무자가 4대 보험에 가입한 회사에 취업할 경우 소재지를 알아낼 수 있다는 게 공공연한 소문이어서 개인정보 유출과 거래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부당 추심행위 급증=올해초부터 7월까지 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부당채권추심행위에 대한 민원은 모두 219건, 아직 절반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난해 전체의 179건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신용대란'이후 주춤하던 부당채권추심행위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출업체들의 이같은 '인정사정 볼것 없는' 채권추심행위에 채무자들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이들의 행위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치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법원 관계자는 “대출업체들의 강제집행 등이 억울하다며 법원에 하소연하는 경우가 많지만 검토해보면 법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오히려 소송비용으로 인해 빚이 늘어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