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종합상황실에 부모와 자녀의 갈등관련 112신고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살려주세요?" 하고는 흐느끼는 목소리로 여학생이 울먹이고 있었다. "이젠 괜찮아요." 머뭇거리며 예기를 했고, 옆에서 "뭐 하는 것이냐!" 하면서 엄마가 전화기를 빼앗았다. 엄마와 통화를 시작했다. "자녀와 다툼이 있었나요?"라고 물었을 때, 어머니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애가 이상해요. 공부하라고 해도 하지 않고 자꾸 학교에 가는 것을 거부해요." 아이와의 문제가 있음을 직감하고 아이와 조금 떨어져서 통화하기를 권했다.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아요. 무슨 문제가 있는지 대화를 시도해 보세요?"라고 답해줬다. 청소년기 아이들은 좌절을 당했을 때 아무에게도 말을 잘 못하고 작은 일에도 화를 내는 경향이 있다.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어요?" 부모님은 자신의 자녀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공부하기 싫다고 해서 내가 소리를 쳤다"라고 말을 했다. 112에서는 우선 집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순찰차를 현장에 보냈다.
기성세대가 아래세대와 갈등이 있는 경우 말을 듣지 않고 반항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래 세대들이 기성세대와 동일한 가치관을 가질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 이 착각은 기성세대들은 경험이 적은 아래세대 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후배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에서 비롯되어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아래세대와 갈등을 줄이려면 인격체로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기성세대들이 자신의 욕망을 아래세대에게 강요하면 참지 못하고 덤벼드는 것이다. 그러면 기성세대들은 당황해서 무력으로 제압을 하거나 막말을 하게 된다. 기성세대의 성숙하지 못한 이러한 상황이 바로 '갑질'로 비쳐지기 십상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대화이다. 기성세대들은 아래세대와 대화할 때 질문을 하면 즉시 대답하기를 원한다. 아래세대들은 즉답을 못하는 여러 가지 심리적인 이유가 있다. 먼저 아래세대와 대화를 할 때 "네가 하는 일이 그렇지?" 또는 "말해봐" 등 다그치면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는 공감을 해주는 대화법이 필요하다. 만약 대화를 거부한다면 분위기를 만든 다음에 기성세대가 먼저 자신의 마음 감정을 이야기해 본다. 일방적인 훈계보다는 적극적으로 들어주고 공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성세대가 아래세대와 갈등을 줄이고 싶다면 인격체로 인정해 주고 대화로 소통을 해야 한다. 인생 경험이 없는 아래세대는 자신이 겪고 있는 경쟁, 실적, 외모 고민 등의 이유로 기성세대 보다 힘들어 하는 것이다. 아래세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관심을 가지고 무한한 신뢰를 해준다면 관계는 회복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아가 이런 관계를 경험한 자녀들은 '갑질'에 대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사회인으로 성장 할 것이다.
가족에 대한 관심과 칭찬으로 상대를 인정해야 만이 서로 간의 신뢰 속에서 서로를 섬길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기성세대가 많아질수록 사회의 약자들에 대한 '갑질'은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추석에는 기성세대가 보름달처럼 둥글게 아래세대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 보고 공감하는 명절이 되기를 기원한다. 이러한 공감대를 통해서 매년 명절만 되면 가족 간의 문제로 발생하는 범죄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김윤식 범죄심리학자·경기남부경찰청 112종합상황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