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없이 어찌/이 쓸쓸한 시절을 견딜 수 있으랴 너 없이 어찌/이 먼 산길이 가을일 수 있으랴 이렇게 늦게 내게 와/이렇게 오래 꽃으로 있는 너 너 없이 어찌/이 메마르고 거친 땅에 향기 있으랴
도종환(1955~)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누구에게나 고향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하나이며 어머니로 표상되는 곳이다. 태어나고 자라난 고향은 차마 돌아가고 싶은 동경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고향의 회귀 의식은 존재적 본능이며, 그 장소에 우물과 같이 '상상의 두레'로 날마다 퍼내도 '그리움의 샘물'로 고이는 이유는 마르지 않는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험하고 거친 인생길을 방황하다가 먼 하늘을 보며 쓴웃음을 짓고 쉴 수 있는 것도, 삶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고향이 하늘 너머에 있기에 그렇다. 고향이 있는 자, 혼자가 아니기에 "이 쓸쓸한 시절을 견딜 수 있"는 '무한한 에너지'이며, "이 먼 산길이 가을일 수 있"는 '아름다운 동행'이랴. 고향은 기쁘고 즐거울 때 생각나지 않지만 지치고 힘겨울 때 "늦게 내게 와/이렇게 오래 꽃으로 있는" 꿈에도 잊을 수 없는, 변하지 않는 향수인 것이다. "이 메마르고 거친 땅에 향기" 가득한 것도, 이와 같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