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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전 인천시 강화군 교동도 대룡시장. 주인 잃고 굳게 잠긴 시계방의 시곗바늘들이 무심히 돌아가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실향민 장터인 인천 강화군 교동도 대룡시장이 빈 점포가 점점 늘어나며 자꾸 늙어가고 있어 대룡시장 활성화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오른쪽 아래 작은 사진은 누군가 할아버지를 추억하기 위해 황세환 할아버지의 작업 모습을 출입문에 붙인 종이.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국내 대표적인 실향민 장터인 인천 강화군 교동도 대룡시장에 빈 점포가 점점 늘어가면서 앞으로 4~5년 뒤에는 그 명맥이 끊길 수도 있다는 우려가 크다. 시장이 형성된 한국전쟁 때부터 가게를 지켜온 주인장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뜨고 있기 때문인데, 자꾸 늙어가는 대룡시장 활성화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9일 오전 11시께 찾은 대룡시장에는 주인 잃은 시계방의 시곗바늘만 무심히 돌고 있었다. 이 가게를 60년 넘게 운영해 온 황세환(1939년생) 할아버지가 올 4월 세상을 뜨면서 교동도의 유일한 시계방이 문을 닫았다.

탁상시계·괘종시계·손목시계 등 가게 안팎에 진열된 물건들은 주인장의 생전 모습 그대로 그 자리를 지켰다. 문고리에 꽂힌 각종 공과금 고지서 뭉치만이 주인의 부재를 알렸다. 누군가 할아버지를 추억하기 위해 출입문 유리 위에 붙인 종이(사진 속 작은 사진)가 눈길을 끌었다.

시계방 바로 옆 신발가게 주인도 지난해 봄 별세했다. 그는 한국전쟁 때 황해도 연백군에서 피란 와 평생을 대룡시장에서 장사했다고 한다. 인근에 있는 황해도 출신 노부부가 운영하던 문구점도 2014년부터 주인을 잃은 빈 점포로 남아있다. 시장 안쪽 골목에는 빈 건물이 여기저기 방치돼 있다.

교동도에 하나 남은 약국 '동산약방' 주인인 나의환(85)씨는 "한국전쟁 때 내려와 장사를 시작한 분들인데 대부분 돌아가시고 몇 분 남아계시지 않는다"며 "4~5년 뒤면 시장에서 실향민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전쟁 전까지 교동도 주민들의 생활권은 황해도 연백군 연안읍이었다. 교동사람들은 시장을 따로 두지 않고, 장을 보러 연안읍으로 갔다. 교동도에서 연백군은 배를 타면 10분이 채 걸리지 않고, 썰물 때면 헤엄쳐서도 갈 수 있는 거리다.

대룡시장이 생긴 것은 한국전쟁 때 황해도 연안에서 교동도로 피란민이 몰리면서부터다. 이때 교동도로 피란 온 사람은 3만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농사지을 땅이 없는 실향민들은 장사 외에는 생계 수단이 많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며 점점 쇠락해 간 대룡시장은 2010년 공중파방송 인기 예능프로그램의 촬영지로 잠깐이나마 유명세를 타기도 했지만, 지금은 또다시 방문객의 발길이 뜸한 상황이다. 2014년 교동대교가 개통돼 육로가 생겼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시장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80대 실향민은 "외지사람들이 뭘 사줘야 하는데, 사진만 찍고 가니까 그다지 반갑진 않다"며 "가게를 이을 사람이 없으니 우리가 얼마나 남아 있겠느냐"고 했다.

교동도 토박이인 한기출 교동역사·문화발전협의회장은 "교동대교가 개통됐어도 시장 상인을 비롯한 주민 대부분은 섬이 활성화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대룡시장을 보존하고, 활력을 불어넣을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