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사드=북핵 방어용' 논리로 중·러 설득 실패
김정은 무모한 도발 막을 수 있는 '中 영향력' 여전
전략적이고 유연한 사고로 대외적 위기 대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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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북한의 5차 핵실험으로 사드 배치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여야 영수회담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사드 배치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한미의 사드 배치는 되돌릴 수 없는 결정으로 보인다. 주한미군 사드 배치의 정치학은 군사적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1차 방정식이 아니다. 군사와 안보는 같은 개념이 아니다. 군사적 관점은 재래식, 비대칭 등의 군사력 비교에 근거한다. 그러나 안보는 정치·경제·외교·군사의 모든 면을 고려해야 하는 개념이다. 1차원적인 군사적 관점에서 사드의 필요성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미국과 중국의 패권주의의 상징이라는 정치외교적 관점은 북핵 못지않게 중요한 개념이다. 강 대 강의 군사적 대치의 심화는 미·중간의 갈등으로 이어지고 한반도의 긴장 수위는 임계점을 향해 치닫게 될 것이다.

사드가 북핵 방어용이라는 한·미 정부의 논리는 시진핑과 푸틴을 설득하지 못했다. 중국은 사드가 미국과 중국의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에 의한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을 깬다고 보고 있다. 한·미가 아무리 사드를 북핵과 미사일 방어용이라고 해도 중국은 미국이 동아시아의 패권을 위해 미사일 방어체계(MD)를 구축하려 한다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드 배치 반대를 '대안없는 정치공세'로 규정했다. 새삼 사드 배치를 반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의미할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사드 배치 결정 이후 박 대통령의 사드 관련 중·러 등과의 정상회담에서 보인 태도는 전략적이지 못하다. 스스로 운신의 공간을 좁히는 전략적 우를 범할 개연성을 높일 뿐이다. 굳이 우리가 나서서 사드 배치를 주장할 필요가 없다. 중국의 인식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한 미군의 사드 배치는 한미동맹에 의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소극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군사·외교·경제 등 한국의 전략적·안보적 이해에 부합한다.

북핵 실험 이후의 대북제재 수위를 높여도 중국이 적극 동참하지 않으면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음은 이미 4차 핵실험 이후에 입증됐다. 외교부는 11일 세가지 분야에서 새로운 강력한 결의를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미국의 전략적 이해와 한국의 국익이 다르다는 국제정치적 인식의 전제하에서 북핵과 한반도 안보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 한국의 독자적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를 이용한다면 사드배치 결정 이후에도 한국이 운신할 수 있는 전략적 공간은 얼마든지 열려있다. 북핵을 억제하고 김정은의 무모한 도발을 막을 수 있는 중국의 영향력 행사는 여전히 긴요하다.

군사적인 대처는 물론 중요하다. 내년도 예산에도 40조의 국방비가 편성되었다. 국방비 예산이 처음으로 40조를 돌파했다. 2005년도에 20조에 불과하던 국방예산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2배 가까이 늘었다. 그러나 북의 군사적 도발을 막는 길은 군사와 외교 양면에서 이루어지는 안보적 이익의 극대화에서 찾아야 한다.

미국이 북한을 직접 타격할 가능성은 현재로써는 낮지만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에 위협을 느낀다면 군사행동의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군사적 대치와 촘촘이 짜인 전략자산들의 한반도 전개가 최악의 시나리오로 현실화되지 않게 하려면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한반도 전쟁의 당사자는 한국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사드 배치 반대를 '대안없는 정치공세'로 볼 일이 아니다. 사드 반대가 정략적 사고며, 남남 갈등과 분열을 유발한다고 보는 구태의연한 스테레오 타이프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략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북핵이라는 미증유의 대외적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 핵무장론은 실현 가능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주변 강대국들을 자극함으로써 한반도를 최악의 국면으로 몰고 갈 것이다. 이미 연두 회견에서 박 대통령도 핵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피력한 바 있다. 핵무장론 제기야말로 보수층 결집을 위한 의제(어젠다) 선점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정략적 발상이다.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