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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관 수도권기상청장
결실의 계절 가을. 최근 국내산 농산물 속에 수입에서만 접할 수 있었던 구아바, 망고와 같은 과일들이 선보이고 있다. 이는 아열대·열대 작물 재배가 국내에서도 가능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한반도에서 '아열대'라는 단어가 언급된 것은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이며 이때부터 우리나라가 아열대 기후로 바뀌고 있다는 주장이 시작됐다. 실제 지난 100년간(1911~2010) 우리나라 대도시의 평균기온은 1.8도 올랐으며, 세계 평균 0.75도에 비해 상승 폭이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5월부터 폭염 특보가 발표되고, 올여름 전국 폭염 일수가 22.4일을 기록하여 1973년 이래 최고 2위를 경신하는 등 한반도의 기온상승은 일상생활에서도 어렵지 않게 체감할 수 있다. 또한, 아열대는 비가 적은 곳이 많은데 이와 비교하면 작년 가뭄으로 몸살을 앓았던 한반도는 남 이야기 같지가 않다.

한반도의 기후변화는 타 산업보다 기후에 의존적인 농업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는 각종 국내산 작물의 재배 남방 한계선을 북상시킨 것인데 대구, 경북이 주산지인 사과는 포천, 연천 등 경기 북부, 제주 한라봉은 충북 충주, 복숭아는 경기, 강원으로 올라갔다. 또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상승은 재배한계선 북상에 그치지 않고 그 빈자리를 수입에 의존했던 아열대성 과일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비싼 난방비로 인해 실험단계였던 아·열대성 과일들의 국내토착화 성공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지난해 바나나가 열려 화제가 되었던 제주도에서는 아메리카 열대지역이 원산지인 파파야를 재배하는데, 겨울에도 하우스 온도가 유지돼 추가난방이 불필요할 정도라고 한다. 각 지자체는 기후변화에 대응해 새 소득작목으로 열대과일 발굴과 육성에 주력하고 있어 국내 농업의 전반적인 구조가 변화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은 우리나라 기후가 아열대라고 확대해석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많다. 기후 지역이라는 것은 구분이 어렵고 변동성이 있기 때문에 한반도를 아열대라고 정의 내리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반도의 기후는 변화하고 있고, 한반도 아열대화에 대한 경각심을 잃어선 안 된다는 점이다. 이에 환경부에서는 이산화탄소 감축에 대한 문제와 더불어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평균기온 2℃ 상승에 대비한 국가 기후변화 적응대책을 수립하고 있다. 또 기상청은 지난 7월, 기상청·농업진흥청·산림청이 머리를 맞대는 공동세미나를 개최하였다.

건조나 냉동상태로 수입된 과일들이 점차 국산 과일로 변모하면서 배와 사과 같은 토종 과일이 식탁에서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기후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열대 작물 시험재배와 같은 단순 대응만을 준비하다간 현지에서 키운 애플 망고나 바나나 같은 열대·아열대 과일이 우리네 식탁을 모두 차지하지 않을까. 지속적으로 기후변화에 주목하고, 새로운 대처방안을 적극 모색할 때이다.

/양진관 수도권기상청장

약력: 부산출신, 부산대 졸업, 서울대 대학원 대기과학과 석사 학위, 2008년부터 2년간 호주 Bureau of Meteorology에서 국외훈련. 기상청 지진감시과장, 총괄예보관, 기상레이더센터장, 지진관리관, 예보국장 등 주요 보직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