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묘겸 간단한 묘사 대신 하기도
생활패턴 달라지니 명절 풍속도
바뀔 수 있겠지만 조상 기리고
부모 공경하며 자식 사랑하는
근본가치 흔들릴까 걱정이다
추석 당일 장남인 필자는 제주가 되어 도포를 차려입고 지방을 써 붙이고 추석 차례를 주제한다. 맏며느리인 처가 여러 날 시장을 보고 전통식으로 정성껏 장만한 제수를 차리고 아들과 동생 가족 더불어 단란하게 차례를 올린다. 대학원생인 아들은 제 어머니가 여러 날 장을 보아 전통식 상차림으로 제수를 마련하는 것이 힘들어 보였는지 생선 지짐과 야채전 대신 자기가 피자를 만들어 제상에 올리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제수를 진열하는 전통적 조율이시(棗栗梨枾) 홍동백서(紅東白西)의 상차림 예법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옛 성인도 시절 풍속을 따른다 하였으니 상차림의 옛 방식을 고수할 필요가 없겠으나 돌아가신 아버님은 생전에 손자들과 피자를 가끔 드셨으니 싫어하지 않으시겠지만 수십년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피자 구경도 못 하셨을 터이니 어떠실까? 조상은 내 존재의 뿌리이니 이를 기리는 차례는 돌아가신 이를 존중하고 정성과 예를 다함이 근본이라 산 자의 편리보다 조상님의 입장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답변해 본다.
요즈음 명절 스트레스 증후군이 회자된다. 명절 연휴가 지난 후 정신건강 의학과를 찾는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이 많고 최근 몇 년간 추석 지난 다음 달에는 평균 이혼 건수가 10% 가까이 늘어났다는 통계도 있다. 고등교육을 받고 취업하여 부부가 대등한 맞벌이 전선에서 바쁜 요즈음 며느리들은 모처럼 연휴에 쉬고 싶거나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다. 그런데 시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잔소리 들어가며 익숙하지 않은 제수 마련에 온종일 허리를 굽히고 있자니 심신의 스트레스로 두통을 앓고 평소의 가정 불만과 갈등까지 증폭되어 참기 어렵다고 한다. 이는 평소 고부 또는 부부간 소원한 인간관계에서 뭔가 어색하거나 얄밉거나 따분하거나 젠 체 하거나 아집스러움이 복합된 그 어떤 부조화의 누적됨에서 비롯됨이 아닐까.
최근 번거로운 전통식 차례상을 마련할 것 없이 조상님 산소에 성묘 겸 간단한 묘사로 추석 차례를 대신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한다. 생활 패턴이 달라지니 명절 풍속도 바뀔 수밖에 없겠으나 조상을 기리고 부모를 공경하며 자식을 사랑하는 근본 가치가 흔들릴까 걱정이다.
노인 인구가 어린이 인구를 추월하는 고령화사회가 빠르게 진행되고, 젊은 층의 취업난과 만혼 경향 및 독신과 이혼의 증가 등으로 작년에는 우리나라 1인 가구가 520만, 전체 가구의 27%에 이르러 처음으로 2인 가구를 앞지르고 수위를 차지하였다. 분열현상이 가속화되는 가족공동체 속에서 효친자애(孝親慈愛) 숭조애족(崇祖愛族)의 근본을 어떻게 지켜갈까?
잘 익은 밤이 땅에 툭 떨어진다. 천지의 선물인 뭇 열매들은 성숙하면 모체를 떠나 동물이나 인간의 먹이가 되거나 적당한 물과 햇빛과 공기를 만나 땅속에서 새순을 싹 틔우며 생명의 순환을 이어간다. 모든 생명은 가을철이면 하나의 생장주기를 마감하고 퇴장하게 되니 가을기운을 추살기운(秋殺氣運)이라 하였다. 결실의 계절 한가운데서 때가 되면 도적처럼 스며들어 모든 생명을 살리고 키우고 마감시키는 하늘기운, 우주자연의 이치를 관조하며 국조 단군의 홍익인간, 천부경에 담긴 천지인(天地人) 합일사상을 새겨본다. 살아있는 동안 이웃과 가족을 형통하게 하고 만인을 이롭게 하고 나를 바르게 하며 하늘 땅 조상의 은혜와 하나되어 천지인이 합일하는 조화세상을 꿈꾸어 본다. 하늘에 빛나는 둥근달을 쳐다보며 가족과 국가공동체 한가운데 있는 오늘날 나의 정체성(正體性)을 물으며 심신의 안정과 신명(神明)의 회복, 우주 자연과 생명 율동에 대한 신비로운 경외감과 아름다움을 느껴보는 한가위가 되었으면 좋겠다.
/손수일 법무법인 로쿨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