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집권적 위기대응 시스템 한계로 골든타임 놓쳐
권한·책임 지방 부여로 주민 안전 대응력 높여야
특히 역대 최강의 폭염을 견뎌낸 안부 인사에도 불구하고 추석 연휴를 목전에 두었던 12일 밤, 경북 경주에서 사상 초유의 강진이 발생해 흉흉한 민심에 쐐기를 박았다.
올 여름 기록적인 폭염은 여러 과제를 남겼다. '폭염의 일상화'. 즉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현재와 같은 폭염은 가까운 미래에도 일상이 될 것이다. 이제는 폭염에 익숙해지고 동시에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 태풍이나 홍수처럼 자연재난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폭염에 대한 규정이 없다 보니 체계적인 지원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지자체에서는 '무더위 쉼터'를 운영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폭염은 물러갔지만 폭염의 여파는 전기료 누진 폭탄논란과 함께 장바구니 물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7~9월 사용분에 한해 누진제 기준 구간을 50㎾h씩 올려 전기료 경감 효과를 내겠다지만 솔직히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문제는 6단계, 최대 11.7배의 누진제다. 주민들은 실제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누진제 개편이 이루어져 올 겨울부터 당장 적용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여름철만 넘기고 보자'는 식의 반짝 '할인쇼'로 끝날지 지켜보고 있다.
추석연휴에 만난 주민들은 여름 내내 전기세 누진세 때문에 열 받다가 이제 가을이 되니까 물가는 오르는데 살림살이는 더 팍팍해졌다고 한숨을 쉬었다. 배추 한 포기 1만원, 시금치 한단에 7천~8천원, 제대로 된 무는 5천~6천원. 이게 지금 우리나라 채소 물가의 현실이다. 김치가 '금치'에서 올해는 '다이아몬드' 배추라고 해야 할 정도다. 다이아몬드 배추로 상징화되었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추석민심의 중심에 자리했다. 2학기 자식 대학 등록금은 어떻게 마련할까, 졸업해 취직이 안되면 어쩌지, 자식 결혼을 서둘러야 할 터인데 집장만은 어쩌지, 장사는 이제 좀 풀리려나 등 먹고 사는 민생 문제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가 가장 많았다.
민생고(民生苦)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더해 추석연휴 직전 발생한 '9·12 지진'으로 먹고사는 문제에 '안전하게 살 권리'까지 고민이 확장되었다. 경주발 지진은 전국을 흔들었고,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며 연방 가슴을 쓸어내릴 정도로 전 국민이 불안에 떨었다. 전국 곳곳에서 진동이 느껴졌고, 크고 작은 피해가 발생했다. 아울러 지진 무방비 모습이 고스란히 노출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우리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라는 충격파를 던진 강진 사태를 계기로 국민 생명과 안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졌다. 현 재난방재 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전면적인 대책마련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문제는 정부 대응의 후진성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우리는 정부의 대처가 얼마나 무기력하게 돌아가는지 수없이 경험해왔다. 2014년 세월호 사고와 2015년 메르스 사태가 골든타임을 놓친 정부의 늑장대응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큰 구멍이 났었다는 걸 정부는 이번에도 잊은 듯하다.
폭염과 지진이라는 자연재해를 겪으면서 또 다시 지방분권형 정치를 생각한다. 자연재해나 사회재난이 발생하면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정부만 바라보게 된다. 중앙정부의 지침을 기다리다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현재의 중앙집권적인 위기관리시스템은 현장 대응력에 한계가 있으며, 재난의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지방에 재난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내려주는 실질적 지방분권이 이뤄져야 한다.
지난 4월 큰 지진 피해를 입었던 일본 구마모토현의 가바시마 이쿠오 지사가 "구마모토는 평소 지진이 없는 지역이어서 과신했다"면서 "(국가와 지자체가) 모든 사태에 대비할 수 없으니 어떤 상황에도 대비할 수 있는 대응력을 키우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밝힌 인터뷰 내용을 상기할 때다.
지방정부에 과감하게 의사결정권을 환원시켜줘서 어떤 상황에서도 대비할 수 있는 현장 대응력을 키워 주는 게 중요하다. 자치분권은 주민의 생명과 안전 대응력을 높이는 버팀목이다.
/염태영 수원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