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베트남어 등 소수언어 선택
공부 안 하고도 쉽게 등급 받아
요행 바라는 수험생들 늘어나
대입수능 전체 공신력 떨어져
글로벌환경에 발맞춰 도입된
제2외국어 평가방식 재검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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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철수 한신대 교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11월 치러지는 2017학년도 대입 수능의 제2외국어·한문 영역 지원자 중 69%인 6만5천153명이 아랍어Ⅰ을 선택했고, 이는 2005학년도 수능에서 아랍어가 채택된 뒤 가장 많은 응시생 수라고 발표했다. 최근 3년간 추이를 보더라도 2015학년도 아랍어 응시생 수는 1만6천800명에서 2016학년도에는 4만6천822명으로 급속하게 증가했다.

물론 수험생들의 아랍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거나 사회적 수요 때문이라면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비교적 실용도가 높다고 판단되는 중국어나 일본어 등은 외국어 실력이 우수한 학생들과 경쟁해야 하고 아랍어는 절반 이상만 맞아도 1~2등급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응시생이 급증하고 있다는 교육 현실이 안타깝게만 느껴진다.

현재 제2외국어는 대학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탐구 과목을 대체할 수 있고, 가산점을 부여하는 사례도 있어 제2외국어 응시에 대한 관심이 매년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입시 학원에서도 아랍어 시험은 매우 기본적인 단어를 찾아내거나 제시된 그림만 보고도 답을 맞힐 수 있다고 학생들을 유인하는 등 새로운 사교육 시장을 만들어 내고 있다.

대입 수능은 상대 평가이므로 응시인원이 많을수록 1등급을 받는 학생 수가 많아지게 되는데, 이처럼 많은 학생이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요행을 바라며 시험을 치르는 것은 교육적 차원에서 볼 때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제2외국어로 아랍어를 선택한 학생이 많아진 것은 중국어나 일본어 등에 비해 월등한 실력을 갖춘 학생이 적어 상대적으로 높은 등급을 받는 데 유리하다는 인식 때문일 것인데, 실제로 아랍어를 정규 과목으로 가르치는 고등학교는 전국에 5곳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특정 외국어 쏠림 현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4년 베트남어가 선택과목으로 지정되자 아랍어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선 바 있다. 베트남어가 아랍어보다 쉽게 출제될 것이라는 정보가 이미 수험생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른바 '소수 언어'를 선택하면 공부를 안 하고도 손쉽게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있다는 맹점이 나타나면서 대입 수능 전체의 공신력이 저하되고 있다.

실제로 베트남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늘어나고 다소 어렵게 출제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제2외국어 응시생 가운데 아랍어를 택한 비율은 지난해 51.6%에서 69%로 늘어난 반면, 베트남어의 경우 지난해 18.4%에서 올해는 5.5%로 급감했다.

등급 하나가 수험생들의 당락을 좌우하는 치열한 경쟁 상황 속에서 상당수 학생들이 요행을 바라며 아예 공부도 하지 않고 시험을 치르는 지경에 이르렀고, 즉흥적으로 선택한 제2외국어 점수로 대입 결과가 뒤바뀔 수도 있는 상황을 결코 좌시해서는 안 될 것으로 본다.

이쯤 되면 교육적 효과와 무관한 특정 과목 선택이 대학 입학을 위한 일종의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방치하는 교육부와 교육과정평가원 등 입시 당국의 안일한 태도를 지적할 수밖에 없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글로벌 환경에 발맞춰 영어 이외의 기타 언어 교육을 목적으로 도입된 수능 제2외국어 평가 방식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본다.

초등학교부터 12년간 정규 교육과정을 이수하며 열심히 대학입시를 준비해 온 수험생들에게 교육 목적과 상관없이 특정 과목 선택을 유도하는 현행 입시 제도가 너무나 가혹하다. 아울러 1점이 아쉬운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또 다른 사교육을 강요시키는 것 역시 커다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외에도 국제화 시대에 부응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교육해 왔던 다양한 제2외국어 과목에 대한 응시생들의 비율이 점차 낮아지고 있어 정상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문철수 한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