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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땅에서 살고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는 것은 땅의 후덕(厚德) 때문이다. 주역에서 땅은 실상 그 움직임이 지극히 강하지만(動剛) 현상으로 느껴지는 땅은 지극히 고요하다(至靜)고 하였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속도는 너무 빠르고 강하지만 우리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땅이 지닌 方正한 德이다. 사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라는 어마한 움직임에 비하면 일시적인 지진은 그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작은 움직임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작은 움직임이 어마한 災難의 움직임으로 느껴지며 그 때서야 비로소 땅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하며 실감한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의 안전에 위험을 느낄 때라야만 땅을 돌아본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잊어버린다.

주역의 박괘(剝卦)는 광대한 대지 위에 산이 있는 상이다. 그렇듯이 사람들의 터전도 대지위에 건설한 것이다. 지반이 요동치면 산도 무너지고 인간의 집도 무너지니 그래서 집을 안전하게 유지하고 싶으면 집을 으리으리하게 지을게 아니라 그 집을 짓는 아래의 땅의 후덕(厚德)을 살펴보라고 하였다. 천지는 천지 나름대로의 생리를 따라 운동할 뿐 인간의 안전은 관심 없다. 그러니 천상 인간이 그 운동양상에 맞추어 땅의 후덕에 의지할 뿐이다. 하늘이 없으면 단 한 번의 숨도 못 쉬고 땅이 없으면 한발자국도 걷지 못하면서도 사람은 천지에 감사하다는 인사도 한번 하지 않는다. 그렇게 각박하게 관심이 없는데 땅의 후덕이 제대로 발휘할까! 인간은 땅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오만이 있는 한 땅은 인간에게 후덕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