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2201001347200065281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효원공원 서쪽 입구부터 CGV까지를 '나혜석 거리'라고 부른다. 지난 2000년 수원이 고향인 한국 최초의 여류화가 나혜석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예술 문화의 거리'다. 동쪽 끄트머리에는 앉아 있는 나혜석이, 반대쪽에는 우뚝 선 나혜석의 동상이 300m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이곳의 노을은 높은 건물들과 묘하게 어우러져 수원 팔경의 하나인 서호낙조(西湖落照) 만큼이나 아름답다. 일출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때 그랬다는 얘기다.

지금 나혜석 거리에는 '나혜석'도, '처연'한 노을도, 가슴 설레는 일출도 없다. 여전히 두개의 동상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길 가운데 노점상이 들어서면서 서로 눈빛을 마주치는 것조차 불가능해 졌다. 이 곳을 찾는 그 누구도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9말10초(9월말 10월초) 특히 낭만있던 거리는 이제 술집과 음식점이 즐비한 맛집 골목이 돼 버린지 오래다. 밤이면 술을 마시고 떠드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거리는 고기굽는 냄새로 진동한다. 얼마 전 이곳에선 '나혜석 음식문화촌 축제'가 성대하게 열렸다.

'비틀스 횡단보도'로 유명한 런던 북부 '애비 로드'는 비틀스의 마지막 앨범 '애비 로드'를 거리명으로 만들어 팝 음악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의 성지가 됐다. 비틀스 팬이라고 자부한다면 이곳을 한 번은 꼭 찾아야 할 정도로 유명한 거리다. '롬바드 거리'는 샌프란시스코 배경의 영화에 어김없이 나오는 단골 무대다. 방콕의 '카오산 로드'는 저렴한 숙박시설과 상점들로 배낭객의 천국이 됐다. 뉴욕의 브로드웨이, LA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도 내로라하는 명소다. 이들 거리가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시 정부의 끊임없는 행정 지원과 홍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혜석 거리를 '예술 문화의 거리'라고 말하기조차 머쓱한 것은 세태의 변화도 한몫했다. 하지만 특화된 거리거나 또는 주변 특징을 고려해 의도적으로 특화거리 이름을 붙였거나 어찌됐든 지정을 했으면 지속적인 예산지원과 행정적 관리, 문화와 내용 보완을 통해 이름 값에 부합하도록 해야 한다. 술과 음식도 문화라고 우기면 할 말은 없지만, 소주와 삼겹살은 비운의 여류화가 정월 나혜석과는 거리가 멀다. 거리를 시민에게 돌려 주든지 더 의미있는 곳에 옮겨 명맥을 유지시키면 어떨지 볼 때마다 늘 아쉽다.

/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