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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도(1916~1976)

꽃 한 송이 피우지 못한 채
기나긴 청춘의 날을

멀거니 바라만 섰기로
안으로 끓이던 그 피

차라리
치장도 겨옵네
훨훨 벗는 황금의상

이영도(1916~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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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바라만 보아도 좋다는 것은 소유하지 않아도 만족한다는 것이다. '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차고 넘치는 행복을 경험할 때, 우리는 더 가지려고 하는 '욕망의 방'에서 해방 될 수 있다. 어쩌면 소유라는 욕망 때문에 "꽃 한 송이 피우지 못한 채/기나긴 청춘의 날을" 무의미하게 흘러 보내며 지금까지 살아오지 않았던가. "멀거니 바라만 섰기로/안으로 끓이던 그 피"가 살아 있다면 열매 맺어가는, 이 가을 자신 안으로 자신을 키우면서 단단해 질 수 있다. 위선과 허상이라는 냄새나는 '치장도 훨훨 벗는'다면 당신도 "황금의상"과 같은 순도 높은 시간을 맞이할 수 있으련만.

/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