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소나기처럼 지나간 그대 정원에 열매 하나가 세상의 맛을 한데 모아 뚝 하고 떨어지는구나 다 쭈그러든 모과 하나
조오현(1932~)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모과는 오랜 시간 자신을 허공에 걸어 놓고 육체의 고통과 계절의 미혹에 찌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다. 온전하게 한 곳에 집중한 '모과 얼굴'에서 상처와 향이 동시에 아로새겨져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자신을 건다는 것은 미혹의 즐거움과 상처의 고통을 억압하고 불순물이 제거된 그대로의 마음을 바친다는 것이며, 열매는 그것의 지난한 세월의 발자취가 아닐 수 없다. "가을이 소나기처럼 지나간 그대 정원에" 걸려 있는 저 모과 "열매 하나가 세상의 맛을" 품기 위하여 어떠한가. 마음을 한데 모으고 마음의 끝까지 가서 그 마음을 뛰어넘어, 비로소 노랗게 물든 작은 우주 하나 달려 있는 것같이, 가을비 속으로 "뚝 하고 떨어지는" "다 쭈그러든 모과 하나"를 보면 '압축의 언어'에 스며있는 '축척의 향기'에 취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