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랙스트링은 즉흥음악 앙상블이다. 재즈로 볼 수 있고, 월드뮤직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존의 장르적 경계를 허물면서, 독특한 자기 세계를 지향하는 즉흥음악 앙상블'이라고 보는 게 가장 맞다.
이런 블랙스트링을 한국의 음악계는 얼마큼 주목하고 있을까? 블랙스트링의 음반을 어떻게 평가할까? 지구촌 곳곳에 존재하는 재즈와 월드뮤직의 마니아들만큼이나, 한국에서도 그들의 음악이 주목을 받게 될까?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 음악의 가치를 우리가 모른다! 우리 뮤지션의 실력을 우리가 외면한다!
블랙스트링은 한국의 전통음악에 기반을 두고 있다. 블랙스트링이란 말 자체가 거문고(玄琴)를 뜻한다. 거문고는 지구상에 유일하게 이 땅에만 존재한 악기다. 악기의 형태도 독특하고, 악기를 소리 내는 방식도 독특하다. 세계의 민족음악학자는 그래서 더욱 주목한다. 하지만 거문고는 한 때 국악에서도 홀대 받는 악기였다. 관현악에서 소외되기도 했고, 심지어 얼마지나 박물관에 들어가야 할 악기라고 했다.
블랙스트링의 리더이자 거문고의 명인 허윤정은 달랐다. '한계가 특성'이라는 자세로, 거문고만이 낼 수 있는 연주력의 최대치를 끄집어냈다.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거문고와 허윤정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블랙스트링은 허윤정을 중심으로 이이람(대금, 단소, 양금), 오정수(기타)의 세 명으로 출발했고, 황민왕(소리, 아쟁)이 참여하면서, 한국음악의 소재를 보다 넓혔다.
새 음반의 여러 곡 중에서 한 트랙만을 선택하라면, 'Growth Ring'이다. 생장륜(生長輪) 또는 나이테로 풀이된다. 이 제목은 한국음악 자체의 그간의 성장처럼 보이기도 하고, 블랙스트링의 음악적 행보를 말해주는 것 같다. 주목과 방관을 반복해오면서 안으로 단단해지고, 온기와 냉기를 거치면서 스스로의 활로를 모색하는, 토종적인 한국음악의 숙명처럼 숭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블랙스트링의 음악이 견고하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이 곡은 한국 전통음악의 세 장르인 정악, 탈춤, 민요가 순차적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 음악을 보다 더 심층적으로 살피면서, 이 셋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 기존의 국악적 시각에서 보면 다른 음악이겠지만, 블랙스트링의 입장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한 뿌리의 음악이다. 다소 과장을 허용한다면, 이렇게 진행하는 연주가 마치 선녀의 옷은 꿰맨 자국이 없다는 천의무봉(天衣無縫)처럼 이어진다. 이번에 나온 블랙스트링의 음반 'Mask Dance'를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이들은 국악을 출발점으로 삼지만, '국악의 대중화'를 외치는 그룹이 아니다. 그렇다고 재즈레이블에서 나왔다고 해서 '재즈로의 투항'도 아니다. 블랙스트링은 한국의 전통음악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연주력을 바탕으로 한 음악이다. "이 시대의 국악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가장 합당할까?"라는 질문으로 풀어낸 음악이다. 이런 화두로 풀어낸 블랙스트링의 음악은, 기존의 음악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경계했고, 새로운 음악을 만든답시고 저지르는 '섣부른 실험'도 배제했다. 이런 자세로 만들어진 블랙스트링의 음악은, 한국적 시각으로 보면 우리음악의 '현재형'이 되고, 재즈나 월드뮤직의 시장에서 보면 그간 들어보지 못한 '핫한' 음악이다. 블랙스트링은 이렇게 '한국음악의 자존심'을 세웠고, '세계음악의 돌파구'가 되었다.
/윤중강 평론가·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