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전만 해도 기업경영은
선택과 집중전략이 옳았지만
현재는 급변하는 환경으로
불확실성에 대비 사업구조의
균형과 분산이 더 절실하다
과거·미래 경영이 같지않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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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지금은 작고한 미국의 경영대가(management guru) 피터 드러커를 흠모한 나머지 영어의 중간 이름을 드러커라고 지은 유명 기업인을 안다. 그 이름이 적힌 명함을 내밀었을 때는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현대 기업은 자본주의의 산물이고, 경영학은 미국인들이 발전시켜왔다. 그들을 따르려는 것이 결코 이상한 일만은 아니다.

1990년대 이후 우리 대기업 오너와 전문 경영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경영자라면 제너럴일렉트릭(GE)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잭 웰치일 것이다. 그는 다운사이징(downsizing)으로 대표되는 당대의 분위기를 상징하는 경영자다. 1등이 아니거나 핵심 경쟁력과 무관한 사업을 과감하게 매각해 회사를 회생시켰다. '잭 나이프'라거나 '중성자탄'이라는 그의 별명이 재계에서 다시 회자되는 이유는 우리 기업이 지금 처한 상황 때문일 것이다. 경영자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시 구조조정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선택과 집중으로 대변되는 잭 웰치식 다운사이징은 과연 언제나 옳은 선택일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두 대기업을 보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하나는 삼성그룹이다.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 체제하에서 눈에 두드러지게 사업 영역을 축소하고 있다. 방산과 화학 계열사를 파는가 하면, 계열사 추가 매각도 고심 중이다. 금융 계열사들이 보유한 알짜 부동산마저 팔아치웠다.

물론 이는 전자와 금융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기 위함이다. 전자의 경우도 현재 주요 수입원인 휴대폰과 반도체에 집중하고, 미래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데 대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갤럭시 노트7의 배터리 불량 문제가 터지고 보니, 갑작스럽게 언젠가 꾸게 될지도 모를 악몽 하나가 떠올랐다. 전자와 휴대폰에 올인했는데, 혹시 이 사업들이 잘못된다면? 이는 삼성그룹 구성원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전체를 불안하게 하는 시나리오에 다름없다.

두산그룹이 중공업에 전념하겠다며 주력이었던 맥주를 포함해 소비재 사업을 다 정리한 것은 차라리 실착에 가까웠다. 금융위기 이후 건설업 경기가 나빠지면서 건설 중장비 사업은 어려움에 처했다. 관련 기업 인수에 투입한 부채 원리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핵심 계열사의 적자 전환도 불가피해졌다.

경영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2010년을 전후로 경영 환경이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이전까지는 성장을 기대하며 빚을 내서라도 투자하고 고용하는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불확실성에 대비해야 하는 시대다. 사업을 벌이고 일자리를 만들기에는 워낙 성장을 기대하기 힘든 때다. 이럴 때는 회사 사정이 어려워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지나치게 사업 영역을 줄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불확실성에 대비해 사업 구조의 균형을 추구할 때다. 여력이 있다면 사업 영역은 오히려 분산해야 할 시점이다.

이 주장이 얼마나 당혹스러울지는 잘 안다. 1990년대에는 개인적으로도 재벌들의 문어발식 다각화에 대해 내내 비판적이었다. 우리에게 전문화된 1등 기업이 없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어느덧 그런 기업들이 등장하고 보니, 이제는 우리 기업들이 불확실한 저성장 시대를 견딜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부터 앞선다. 재벌 의존적인 경제에서 대기업 몇몇이 잘못되면 우리 경제가 어떻게 될지 상상할 수조차 없다는 걱정에서다. 해운이나 조선 산업만으로도 이미 이토록 힘든 지경이니.

기업 경영에는 정답이 없다. 환경 변화에 맞는 최적의 해법(optimal solution)만 있을 뿐이다. 20~30년 전만 해도 선택과 집중 전략은 정답에 가까웠다. 지금은 균형과 분산이 더 절실하다. 선택과 집중은 당시 옳았지만 지금은 틀렸다. 시대에 앞서 경영의 미래를 점쳤던 드러커가 말하고 싶었던 것도, 오늘과 내일의 경영이 같지 않으리란 진리였을 것이다.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