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0601000370500017801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의 덕목 중 으뜸은 '애민(愛民)', 즉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사가(史家)들은 세종과 정조를 '백성을 가장 사랑했던 조선의 왕'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세종의 '한글창제'와 정조의 '기록'이야말로 애민사상의 정점이라는 것. 그도 그럴 것이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 싶어도 마침내 그 뜻을 펼치지 못하는 이가 많다. 내가 이를 매우 딱하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로 시작되는 훈민정음 창제 이유는 지금 읽어도 세종의 백성사랑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조선시대 기록문화 백미는 '조선왕조실록'이지만, 의궤(儀軌)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의궤는 국가나 왕실에서 거행한 주요 행사를 기록과 그림으로 남긴 기록이자 일종의 보고서다. 특히 정조 시대의 화성 공사 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와 1795년 정조 19년, 어머니 혜경궁과 아버지 사도세자의 회갑을 맞아 화성과 현륭원에 다녀와서 만든 8일간의 행차 보고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는 정조가 얼마나 기록을 사랑했던 왕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정조는 의궤를 통해 믿지 못할 정도로 세세한 기록을 남겼다. 이는 마치 먼 훗날 이 기록과 맞닥뜨릴 우리 후손들에게 '우리도 이런 멋진 축제를 치렀어!'라고 자랑하는 몸짓으로 보여진다. 그날 그 8일간의 행차는 조선 500년을 통틀어 가장 흥겨웠던 '백성을 위한 축제'였다. 창덕궁과 수원 화성간의 48㎞는 단지 '왕족을 위한 길'이 아닌 '백성들을 위한 열려 있는 길'이었다. 기록은 말한다. '왕은 여섯째 날 새벽 친히 수원 행궁 신풍루에서 홀아비, 과부, 고아 등 사민 50명과 가난한 사람인 진민 261명에게 쌀을 나눠주고, 오전에 낙남헌에서 노인 384명을 불러 경로잔치를 열었다.'

이 장엄했던 축제가 두 세기를 건너 뛰어 기적처럼 우리 앞에 펼쳐진다. 내일과 모레 이틀에 걸쳐 서울 창덕궁을 출발해 한강을 건넌 뒤 수원 화성행궁에 이르는 전 구간이 재현되는 것이다. 이 행사에 '의궤'의 기록이 결정적 고증을 했음은 물론이다. 외형상 총 참여 인원 3천100여 명, 말 400여필이 이 행렬에 참여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220년 전 백성들이 구경꾼이 아니었던 것처럼 이번 역시 시민들이 대거 참여, 함께 울고 웃는 위대한 축제가 될 것이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