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 실세·측근들, 기업 줄세워
급조한 재단법인 의혹 일파만파
박 대통령의 주변 관리 걱정돼
푸틴의 장기집권 벤치마킹일까
국민의 분노하는 현실 직시해야
미르란 '용의 옛 우리말로 주로 왕이나 신을 나타낸다. 심벌의 모티브는 보물 343-5호 반용문전이다. 백제시대 절터에서 출토된 벽돌에 새겨져 있다. 이를 형상화하여 용이 소용돌이치며, 구름을 밟고, 도약하는 형상'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왕·신·용. 로고나 명칭만을 보면 범상치 않은 재단을 목표로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외형적으로 드러난 것은 국감 등이나 언론 보도와 같다. 2015년 10월 27일 미르재단은 삼성과 현대차 등 16개 그룹이 486억원을 출연하여 발족한 문화재단이며, 국가 브랜드 제고를 위해 출범했다고 밝힌바 있다. 엔터테인먼트 중심의 한류를 넘어 음식·의류·라이프스타일 등 여러 분야의 한국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이른바 문화예술을 통한 세계화이다.
문화융성과 창조경제에 기여한다는 자화자찬도 빠지지 않는다. 궁금했다. 누가 이런 것을 기획하였을까. 홈페이지를 보면서 생각했다. 어떤 것을 참고한 것일까. 적어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은 아닐 것이다. 이미 세종연구소로 바뀐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답은 미르(Mir)에 있지 않을까. 미르는 페르시아 등에서는 예언자의 후손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존칭이다. 아랍어에서는 왕자나 사령관의 약칭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러시아어로 미르는 평화를 뜻한다. 1986년 소련이 발사한 인류 최초의 우주정거장의 이름이기도 하다. 재단을 설립한 이들은 무엇을 벤치마킹한 것일까. 상상했다.
러시아의 '루스키 미르 재단(Russkiy Mir Foundation)'이 아닐까. 2007년 푸틴 대통령은 메드베데프 대통령에게 자리를 잠시 물려주기에 앞서 재단의 설립을 지시했다. 러시아의 국가 이미지를 개선한다는 명분이었다. 러시아어 보급과 문화 전파 및 교류 등의 사업을 추진한다는 목적이었다. 비영리 재단인 루스키 미르는 '러시아 세계 내지 평화'를 뜻한다.
그 후 재단은 미국과 일본 등에 이어 서울대와 고려대에 러시아센터를 설립하였다. 2011년에는 부산에 러시아 월드도서관을 세웠다. 지난 9월 26일에는 평양에서 개최된 러시아어 올림피아드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 성과 때문인가. 10월 7일, 푸틴은 '현대 문화 속 푸틴'이라는 책을 64세 생일 선물로 받았다. 대통령으로 복귀한 그가 그림, 사진, 티셔츠, 언론 등에서 새로운 세계문화의 상징이 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박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1952년생으로 동갑이다. 미르나 K스포츠 재단이 정말로 루스키 미르 재단과 같은 일을 하고자 했던 것일까. 푸틴의 일시적 후퇴와 장기집권 프로젝트를 벤치마킹하고자 한 것일까. 아무튼 이른바 비선실세나 측근들이 기업을 줄 세워 급조한 재단법인 미르를 둘러싼 의혹들이 일파만파다. 공적인 목적을 포장하여 사적인 이익을 챙기는 수법 역시 상투적이다. 방식도 구태의연하다. 각종 의혹들이 사실이라면 위법을 자행한 자들을 쳐내지 못하는 대통령의 주변관리가 걱정이다. 많은 국민들은 대한민국과 결혼했다는 박대통령을 믿고 싶어 했다. 역대 대통령과 가족 그리고 측근들이 저지른 지긋지긋한 부정부패가 없으리라 기대했다. 그래서 남북관계나 경제가 어려워도, 장관들이 무능해도 참았다.
그러나 미르사태는 청렴한 박대통령의 이미지까지 날려 버리고 있다. 미르사태 등을 심층적으로 보도했던 미국의 한국어판 주간지 '선데이저널'을 보면서 생각했다. 각종 의혹과 부패의 폭로 속도가 레임덕과 맞물려 더 확산되리라는 것을. 10월 26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지 37주년이 되는 날이다. 살아있는 권력을 등에 업고, 남용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국민들이 왜 '선데이저널'에서 진실을 찾으려고 하는지. 분노하는 현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