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넓고 시설 좋다거나 하지 않지만
햇볕 잘 들어 맘에 드는 레지던스
누군가의 손짓 같기도 하고
반갑게 맞아주는 것 같기도…
귀신과 나는 최소한의 거리둔채
서로 슬픔과 슬픔 나누며 지낸다

그런데 이렇듯 좋은 공간에 오면서 내가 가장 많이 했던 걱정은 귀신이 있다는 방에 입주하면 어쩌나, 였다. 작가들을 위해 운영되는 레지던스들이 그런 소문을 가지고 있다. 무서운 이야기를 너무나 무서워하는 독자들을 위해 차마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작가 특유의 실감 나는 증언과 함께 귀신 이야기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점점 실감을 얻어간다. 나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에 귀신이 나온다는 그 방만은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더 솔직히 말하면 제발 그 방만은! 하고 바랐다.
내가 이 레지던스에 들어온 건 처음이 아니다. 삼년 전에도 입주했는데 그 무렵 엄마가 큰병에 걸렸고 투병을 해야 했기 때문에 몸은 여기에 있지만 마음은 엄마에게로 가있는 시간이 길었다. 물론 엄마 병원을 따라 다니느라 나가 있어야 하는 시간도 길었다. 그럴 때는 또 몸은 엄마에게 있지만 마음은 여기, 내 책상이 있는 곳, 혼자서 내밀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글 쓰는 일을 선택한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모여 있는 레지던스를 그리워한 것도 사실이다.
레지던스에는 방이 많아서 공평하게 제비뽑기로 결정하는데 놀랍게도 내가 뽑은 방이 바로 그 소문의 진원지였다. 스텝이 바로 이곳이 입주하는 작가들마다 상을 받는다는 바로 그 방이에요 라고 소개하는 순간 나는 내가 그 불운의 당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방에 입주했던 사람들이 레지던스에서 나간 뒤 특정 상을 받은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그 방은 그 상의 이름을 따서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물론 불행한 건 그 상은 소설가에게 주는 게 아니고 시인이라도 그런 영광을 위해서는 귀신과 맞닥뜨릴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살게 된 이 방이, 아직까지는 마음에 든다. 다른 방보다 넓거나 시설이 좋거나 하지는 않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햇볕이 잘 든다는 것이다. 햇볕은 이제 오후가 시작되는 지금은 딱 A4종이 한 장만큼 들어와 있고 점점 짙어지고 넓어지고 있다. 아지랑이인지 아니면 구름이 지나가는지 혹은 나뭇가지들이 미세하게 흔들리는지 모르겠지만 그 밝아진 면으로 무언가가 흘러가는 듯한 움직임이 보인다. 누군가의 손짓 같기도 하고 무언가를 반갑게 맞는 것 같기도, 아쉬운 작별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밤이 되어 해가 지고 나면 나는 텅 빈 컴퓨터 화면을 끄지 못해 끙끙대다가도 문득 무서워지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생각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그 귀신이라는 것은 사실 일종의 그리움 같은 것이 아닐까. 그것이 가할 위해에 대해 공포스러워하면서도 혼자이되 혼자이지 않다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여기에는 무언가 슬픈 사연을 지닌 누군가가 마치 볕처럼 머물고 있어 그 슬픔이 깊어지면 어떤 신호를 보내기도 하는 것. 그렇게 생각하면 여기에 머물고 있다는 그 흉흉한 소문의 주인공이 그리 두렵지 않게 느껴진다. 하지만 물론 나는 입주하고 나서 매일 불을 켜고 자고 있고 그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아무튼 귀신과 나는 그렇게 최소한의 거리를 둔 채 서로의 슬픔과 슬픔을 짐작하며 같이 살고 있다.
/김금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