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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설적인 가수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의 노래 가사에 '진세잇데 후시기나 모노데스네(인생이란 불가사의한 것이네)'라는 게 있지만 불가사의한 인생도 흔하다. 13일 89세로 서거한 태국 국왕 푸미폰의 재위기간이 장장 70년이었다는 것만 해도 그렇다. 6살에 즉위한 루이 14세가 72년간 재위였을 뿐 유례를 찾기 어렵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각각 64년과 63년 7개월(現), 일본의 히로히토(裕仁) 왕이 63년, 청나라 강희제(康熙帝)가 61년이었다. 아무튼 푸미폰 태국 왕 별세에 온 나라가 침통에 빠졌고 7천만 국민이 한결같이 흑백 상복 차림인 것도 불가사의하고 한 달간 가무 금지, 오락방송 프로 중단은 물론 복상(服喪) 애도기간을 1년으로 잡은 것도 그렇다. 또 있다. 96세 프렘 추밀원(樞密院) 의장이 후계 왕 즉위까지 섭정을 맡는 것도….

푸미폰이 운명한 날 방콕 서부 시리라트 병원 앞과 14일 병원→왕궁 운구 도로변은 온통 상복 인파였고 여자뿐 아니라 남자들도 울었다. 중국은 CCTV(央電) 장젠(張劍)기자 등이 '푸미펑(普密蓬) 국왕은 학식도 풍부하고 다재다예(多才多藝)했다'는 등 태국의 국상(國喪)을 연일 보도했고 일본도 태국 국상 보도에 열성인 이유가 있다. 아키히토(明仁) 왕이 황태자 시절인 1964년 쇼와(昭和) 부왕 대리로 태국을 방문, 푸미폰 국왕의 극진한 대접을 받았고 1991년 즉위 후에도 첫 외유로 태국에 갔는가 하면 2006년 푸미폰 왕 즉위 60년 식전에도 참렬(參列)한 사이였다. 그래서 아키히토 왕 양 폐하(夫妻)는 푸미폰 복상을 3일간으로 잡았다. 그런데 70년 간 신민(臣民)의 열렬한 사랑과 존경을 받은 푸미폰 왕의 비결은 무엇일까. 재위 기간은 쿠데타 19번, 개헌 20번의 격동과 혼란의 연속이었지만 그는 늘 중재자와 해결사였고 7천만 신민의 정신적 지주였다.

군왕제 국가가 아직도 43개국이라는 건 시대착오 중 착오다. 그러나 전 국민의 구심점, 자석처럼 심정이 쏠리는 회귀점, 그런 중심 역할의 국왕 존재가치만은 필요하지 않나 싶다. 대통령제 국가도 그렇다. 빼어난 인물까지는 몰라도 그럴싸한, 썩 괜찮은 정치 지도자가 있다면 행운이다.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