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양극화·도덕적 해이·정치 실종… 불안감만
우병우·최순실 비호 등 더 큰 부메랑으로 올 수도
정치·권력운용 방식 전환만이 난국타개 단초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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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
20대 총선이 끝나고 6개월이 지났다. 여소야대 국회는 협치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였으나 결과는 참담하다. 사드 배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제기된 각종 의혹, 미르와 K 스포츠 두 재단의 이른바 비선실세 개입 정황, 집권당 대표의 단식과 국정감사 파행, 백남기 씨 사망을 둘러싼 책임 규명 등의 국면에서 정치는 철저하게 실종됐다.

노무현 정부 때의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 기권 과정을 두고 또 다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가 당시 비서실장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휘발성이 강한 사안으로 커지고 있다. 당연히 모든 이슈를 빨아들일 또 하나의 거대한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선을 의식한 지지층 결집에 이만한 이슈도 없다. 한국정치의 문법이 그렇다. 그러나 이러한 블랙홀의 정치공학이 정권 주변의 의혹들마저 덮으리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민심에 대한 심각한 난독(難讀)이다.

대한민국은 국내외적인 미증유의 위기 앞에 아무런 방패없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는 형국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을 급기야 '지옥'에까지 비유하며 북한을 자극하고 있다. 북한 핵의 실전배치는 이제 코 앞이다. 미국은 실질적인 자국 안보의 위기를 느끼고 있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론은 그래서 마냥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한반도 상황이 안정되게 관리되지 못하고 비등점을 향해 치닫는 상황이다.

각자도생으로 치닫는 사회적 연대의 붕괴, 임계점을 향해 치닫는 양극화와 격차의 심화, 기득 엘리트의 도덕적 해이와 권력을 농단하는 '비선실세'의 의혹은 민심의 이반으로 나타나고 있다. 집권 핵심에 기생하여 나라를 좀먹고 있는 무리의 권력 사유화와 농단을 방치하는 야당도 공범이다. 부정의하고 부조리한 의혹의 핵심을 파헤치지 못하는 야당의 무능은 청와대 엄호가 존재가치로 보이는 여당의 친박 핵심과 같은 무게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당나라 후기 시인인 허혼(許渾)의 시 중 '산에 비가 오려 하니 누각에 바람이 가득하네'(산우욕래풍만루 山雨欲來風滿樓)란 시구는 위기가 다가옴을 알리는 선행지수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허혼은 당 제국의 황혼기에 제후들의 발호와 환관의 전횡, 극심한 당쟁을 누각에 가득한 바람으로 표현했다. 요즘 부쩍 주변에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부패, 양극화, 불평등, 도덕적 해이, 정치실종 등은 생소하지 않은 단어들이지만 '누각의 바람'처럼 불길하게 느껴진다. 늘 있어 왔던 현상들이지만 이제 임계점에 온 듯한 불안으로 다가온다.

박근혜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 수사 중이기 때문에 해임할 수 없다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국민을 바보로 알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청와대와 집권당 친박 핵심들의 최순실 씨 비호 등은 더 큰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헌정 사상 초유로 국회에서 통과된 장관해임건의안이 대통령에 의해 거부되었으나 이 역시 정권에는 큰 부담이다. 국회를 대립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순간 권력의 장악력은 역설적으로 떨어진다. 청와대와 친박 핵심 세력들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국론을 모으기 위해서는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집권세력이 특단의 결기를 보여야 한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한 번 밀리면 국정주도권 상실은 물론 레임덕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피해 의식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정치의 방식과 권력 운용 행태의 전환만이 난국을 헤쳐나가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 스테레오타입화한 방식을 탈피할 때도 됐다. 50대 이상과 영남 지역에서의 민심의 이탈 현상은 지금까지의 국정운영방식의 폐기를 주문하는 강력한 요구다.

국민의 요구에 책임지지 않고 반응하지 않는 통치가 성공한 예는 없다. 당나라 태종의 언행을 기록한 정관정요(貞觀政要)에서 위징(魏徵)이 태종에게 간언한 '수능재주 역능복주'(水能載舟 亦能覆舟 물은 배를 띄우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란 말은 현대의 대의민주주의에 그대로 적용된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 1조에 체화되어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최창렬 객원논설위원·용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