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박물관에서 '정조대왕과 수원화성' 특별기획전이 12월 4일까지 열리고 있다. 뜻깊은 전시다. 올해가 정조대왕이 즉위한 지 240년, 수원화성이 완공된 지 220주년을 맞기에 더더욱 그렇다. 또한 '2016 수원화성 방문의 해'가 아닌가? 그가 통치한 시대를 건릉성제(健陵盛際)로 불러 조선후기의 태평성대로 추억한다. 건릉은 정조대왕의 이름이고 성제는 융성한 시대라는 뜻이다.
이 땅에 왕조가 사라진 지금까지도 호감을 갖고 있는 대표적 국왕이 바로 정조대왕이다. 국립고궁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규장각 등 20여 개 박물관과 소장처로부터 대여하여 정조대왕의 진면목(眞面目)을 보여주는 맞춤 전시다. 그는 시·서·화(詩書畵)에 능통했다. 수많은 글을 썼으나 서체가 모두 다르다. 그림도 파격적인 구도다. 어찰(御札)도 숱하게 남겼다. 이 모두가 문예군주라는 증거다. 그걸 읽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전시다. 수원화성박물관이 있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정조대왕의 유물을 한곳에 모아 전시가 가능한 것일 게다.
처음 선보이는 유물도 많다. 화홍문 상량문(上樑文)을 쓴 신하 윤숙에게 보낸 정조대왕의 비밀 어찰도 그중 하나다. 문장가로 이름은 높으나 눈병으로 실명(失明)한 신하에게 완성된 화홍문 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소상하게 적어, 그에게 상량문을 짓게 한 정조대왕의 신하 사랑과 배려를 읽을 수 있다. 전시는 전시물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속에 숨겨둔 뜻을 헤아리는 것도 유물을 보는 쏠쏠한 재미요 의의다. '화성성역의궤'를 간행한 활자를 보관하는 정리자 활자장(整理字活字欌)도 현존하는 2개 유물 가운데 한 점이 전시되어 당시 활자발전사를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유물들은 정조시대가 바로 조선왕조 르네상스였음을 말해준다.
좀 더 일찍 수원화성박물관이 건립되었더라면 정조대왕과 수원화성 관련 유물과 자료를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개관 7년차에 20여회의 기획전 가운데 수원화성박물관의 진가(眞價)를 알리는 최고의 전시다. 앞으로도 수원화성박물관, 이름 그대로 수원화성 관련 유물 발굴과 수집에 힘을 쏟아야 한다. 수원은 정조대왕의 고향이다. 왕좌에서 물러나 화성행궁 안에 노래당(老來堂)에서 지낼 생각이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수원은 왕도(王都)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아픈 죽음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온 정조대왕이다. 수원화성을 축조하고 제례(祭禮)에 필요한 제수를 조달하려 조원(棗園)동에는 대추, 율전(栗田)동에는 밤, 이목(梨木)동에는 배, 우만(牛滿)동에는 소를 키우도록 했다. 동네 이름 역시 정조대왕과 관련이 깊다. 그만큼 수원화성 곳곳에 정조대왕의 생각이 녹아있다는 뜻이 아닐까.
정조대왕은 "민심은 무형의 성(城)이다"라고 '홍재전서'에 적고 있다. 성은 갑작스런 난리에 대비하려고 쌓은 것이다. 그러나 민심을 껴안는 것은 무형의 성이고, 성을 높이 쌓는 것은 유형의 성이다. 3천 명이 한마음이었기에 주나라 무왕은 성을 쌓아 흥했다. 하지만 장성(長城)을 만리(萬里)나 쌓아 난을 대비했으나 진시황은 그 때문에 망했다. 수원화성을 세운 깊은 뜻을 헤아릴 것만 같다. 수원화성박물관의 정조대왕 유물특별전이 그걸 말하는 듯하다.
/김훈동 수원문화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