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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15년 공소시효가 지나도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 후, 자신이 연쇄살인범이라는 자가 나타났다. 그의 손엔 사건 전모를 다룬 자서전 '악마의 고백'이 들려 있었다. 이 책은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심지어 TV에도 출연해 토론까지 벌이며 스타가 된다. 이를 지켜보는 당시 사건 담당 형사, 가족을 잃고 고통 속에 살았던 유가족들 그리고 시청자, 이들은 치열한 진실게임을 벌인다.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 줄거리다. 흥행에 성공 못했지만 관객들로부터 나름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다. 특히 마지막 반전은 압권이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가 이 영화처럼 모두가 참여하는 진실게임으로 확대되는 느낌이다.

회고록과 자서전의 경계는 모호하다. 사실 그게 그거다. 굳이 따지자면 회고록은 어떤 사안을 중심으로 기록되는 반면, 자서전은 더 넓은 범주까지 포함한다. 구술이나 메모를 받아 전문 작가가 대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회고록이라고 모두 좋은 평가를 받는 건 아니다. 정치인들은 과시욕 때문에 출간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회고록이건 자서전이건 늘 진실게임에 휩싸이게 된다.

어찌됐든 이런 유의 책이 갖는 한계는 내용의 진실여부다. 과장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자서전이 사료 가치가 없는 것도 솔직하게 기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패한 정책에 대해 변명하거나 남의 탓으로 돌리고, 반면 업적은 지나치게 미화하는 등 자화자찬으로 채우는 경우가 많아서다. 실패했으면 왜 했는지, 사실대로 기술해야 후세에서 교본을 삼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송 전 장관 회고록의 본질은 2007년 북한 인권 결의안 결정 과정에서 북한의 의견을 물었느냐의 여부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색깔론' 등 정쟁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 회고록으로 누군가는 이익을 얻고 반대로 누군가는 치명적인 상처를 받을 것이다. 현재까지 이번 공방의 최대 수혜를 누리는 곳은 출판사밖에 없다. 서점에서 책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불티나게 팔려, 불황 속에서도 출판사 창비는 때아닌 대박을 맞았다는 소식이다. 쓸데없는 정치공방으로 인해 국민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그 누구도 보상해 주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하나밖에 없다. '내가 살인범이다'처럼 마지막 반전이 있는지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는 것이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