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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서울인천경기 본부장
뜨거웠던 여름이 물러간 후 짧은 가을이 아쉬울 만큼 순식간에 지나가고 있다. 눈에 담는 풍경마다 그림 같다. 산과 들은 물론 도심까지 노란빛으로 치장해 붉은 단풍과 어우러져 가을의 정취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나무, 은행나무다.

은행(銀杏)은 '은빛 살구'라는 의미로 열매의 모양이 살구를 닮아서 붙인 이름인데, 송나라 때 지방 정부가 중앙 정부에 제공하는 조공품 목록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잎이 오리발과 닮아서 압각수(鴨脚樹), 할아버지가 심은 나무의 열매가 손자 대에 열린다 해서 공손수(公孫樹)라 부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는 언제 들어왔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유교와 불교의 전파와 함께 들어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은행나무는 중국이 원산지인 낙엽 교목으로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 분포한다. 잎은 부채모양으로 흔히 2개로 갈라지고 잎끝에 미세하게 물결모양의 무늬가 있다. 잎은 긴 가지에 어긋나게 나지만 짧은 가지에는 뭉쳐서 난 것처럼 보인다. 꽃은 5월에 피는데 암꽃과 수꽃이 서로 다른 나무에서 핀다. 나무껍질은 회색으로 두꺼운 코르크질이 발달했으며 세로로 깊게 갈라진다.

은행나무가 지구 상에 처음 뿌리를 내린 것은 무려 3억 년 전 정도이며 혹독한 빙하기를 거치면서 많은 생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는데도 살아남아 메타세쿼이아와 함께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불린다. 은행나무가 이렇게 오랜 세월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요즘 도심에서는 은행이 떨어져 고약한 냄새를 풍겨 민원의 원인이 되곤 한다. 벌레나 동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인데, 딱딱한 속껍데기를 감싸고 있는 노랗고 물렁한 껍데기에 포함된 은행산과 점액질의 빌로볼 성분이 특유한 냄새의 원인물질이다. 또 은행나무 자체에도 플라보노이드라는 살균과 살충 성분이 있어 벌레의 유충이나 식물에 기생하는 각종 곰팡이, 바이러스를 억제한다. 이러한 보호 장치를 통해 은행나무는 지금까지 가장 오래 살아남은 나무가 되었다.

은행은 폐기능 개선에 도움을 줘 천식에 효과가 있으며,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혈전을 없애는 기능을 한다. 어린이 야뇨증이나 피로회복에도 은행만큼 좋은 게 없다. 그러나 청산배당체라는 독성물질이 있어 날것으로 먹으면 중독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반드시 익혀서 먹어야 하며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자란 은행나무에 세계 어느 곳에 있는 것보다 약리적 물질이 월등히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은행나무는 높이 60m까지 크게 자라며 모양이 아름답다. 수명이 길어 천연기념물 30호로 지정된 양평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수령이 1천100년 이상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 나무 중 가장 키가 크고 당당한 위엄을 보이는데, 조선 세종 때 정3품 당상관의 품계를 하사받기도 했다. 은행나무는 예로부터 절이나 사원, 문묘 등에 많이 심고 보호해 왔기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 중에 은행나무가 가장 많다. 병충해가 거의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드리우기 때문에 정자 옆에 많이 심었고, 자동차 배기가스를 흡수해 정화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건조해도 잘 자라며 추위에도 강해 도심지 주변의 가로수로 심어져 있다.

/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서울인천경기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