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들도 가을의 아름다운 정취를 보고 많은 시를 지어냈다. 가을의 대표 시 가운데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가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라고 시작한다.
'꽃'은 그저 '꽃'일 뿐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소품이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저 길가에 피어있는 풍경의 일부 일 뿐이다.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 그것은 지친 삶을 살아가는데 조그마한 희망이 될 수 있다.
할리우드 '캐스트 어웨이'라는 영화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업무차 여행을 하다 조난을 당한 주인공 톰행크스는 4년간 무인도에서 지낸다. 이 긴 시간을 보낼 때 그에게 위로가 돼 준 친구는 다름 아닌 배구공 '윌슨'이었다.
주인공은 '윌슨'과 대화를 나누며 그 힘든 시간을 버텨왔고, 결국 무인도에서 탈출한다.
세상에 의미가 없는 것은 아무도 없다. 다만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친 일상생활에 나만의 무언가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을 혹자는 감정적 사치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무언가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그로 인해 자신에게 희망의 씨앗을 틔울 수만 있다면 '의미 부여'에 사치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세상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 다만 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은 희망보다 절망을 먼저 생각한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은 대학 학자금을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근근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때문에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힘든 일상에 분위기 전환을 위한 희망을 만들어보자. 그것은 바로 '의미 부여'다.
어느 누군가는 이미 우리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해 삶의 원동력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제 우리도 의미를 부여한 누군가 또는 그 무엇과 함께 지친 삶의 희망을 찾아보자. 조금은 위로가 될 것이다.
/최규원 지역사회부(하남)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