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일동포들 영화 '국제시장'의
파독 광부·간호사 못지않게
한국 근대화에 크게 기여했고
국적보유 애국심 표상처럼 간직
모국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이
짝사랑으로 변하지 않길 바라

영화 '국제시장'의 파독 광부·간호원들의 삶에 재일동포의 삶이 오버랩된다. 30년째 일본에서 근무하며 바라본 재일동포의 삶은 모국을 위한 무조건 적인 헌신이었다.
재일동포들은 시대에 휩쓸려 일본에 거주해왔으나 1952년 일본 국적을 박탈당하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모국으로 돌아가지 못해 '조센징' 등 차별대우를 받으며 여전히 한국 국적을 보유한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로 현재 60만명에 육박한다.
재일동포의 상황은 여느 국가와는 다르다. 재미동포들은 시민권(미국 국적)을 취득하면 매우 경사스러운 일이라며 축하하고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재일동포들은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일본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고 취직을 하며 일상을 살아도 생활상 필요해 일본 국적을 받은 동포들은 재일본대한민국 민단(이하 민단) 단원도 못되는 등 동포사회에서 외면당하고 만다. 이 때문에 일부는 아예 잠적해 버리기도 한다. 일본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 마치 나라라도 팔아먹은 것처럼 말이다.
다행히 최근에는 일본으로 귀화한 사람도 민단 단원이 될 수 있고 민단중앙본부 및 일본 47개 도 도부현의 지방본부 단장 및 기관장은 될 수 없지만 그 아래인 지부 단장은 될 수 있는 등 상황이 나아졌다지만 차가운 시각은 여전하다.
국적을 지키려는 것을 넘어 모국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경우도 있었다. 6·25전쟁 당시 일본대학 재학 중인 동포학생 642명이 조국을 구하기 위해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했다. 당시 참전했다가 가족이 있는 일본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생이별하는 경우는 물론 전사자도 있었다. 88올림픽 당시 재일동포들은 각종 유무형의 차별대우 속에서 사업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당시 100억엔을 국가에 기부하기도 했다. 또 1997년의 IMF 금융위기에는 한국물건 사기, 한국에 저금하기 운동 등을 자발적으로 펼쳐왔다. 현재도 일본에 있는 9개의 한국 총영사관과 대사관의 청사와 관저는 모두 동포들이 성금을 모아 국가에 헌납한 것으로 지어졌다.
재일동포의 조국을 향한 헌신적 사랑에 보답하듯 한국이 일본을 제치는 일이 늘어났다. 삼성이 소니를 이겼고,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에 들어갔다. 겨울연가의 배용준, 동방신기, 소녀시대 등 한류 붐이 일자 일본에서는 한국사람을 다시 보게 되고 우리 동포들도 당당하게 한국인임을 밝히고 김치도 마음대로 먹게 됐다. 일부 일본인들은 한국인에 대한 친근감을 표시하고 한국어를 배우기도 했다.
그런데 유무형의 차별을 견디며 한국 국적을 보유해온 동포들을 한국사회가 차별을 한다. 재일'동포'가 한국어를 못하거나 한국어를 일본식으로 발음한다던 가 서툴다는 이유에서다. 이러한 재일동포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에 대해 아쉬워하는 우리 동포들이 최근에 많이 늘고 있다.
재일동포들은 올해 창립 70주년을 맞은 민단을 유지해 오면서 국제시장에 나오는 파독 광부·간호원 이상으로 한국의 근대화에 크게 기여해 왔으며 그들은 아직도 한국 국적을 애국심의 표상처럼 보유하고 있다. 한국 국적과 여권을 보유하면서 한국사회에 기여하고 일본에 세금을 납부하는 우리 동포들은 비록 선거권이 없어도 일본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들로부터 존중을 받고 있다. 그들의 모국에 대한 무조건 적인 사랑이 짝사랑으로 변해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의 아픔을 견디지 못해 뒤돌아서 '잊혀진 애인'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양계화 주센다이대한민국총영사관 총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