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나라의 운명은 지도자의 영도력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특히 위기 앞에서 지도자가 내리는 결단은 국가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때가 많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비교적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 왔다. 영국과의 독립투쟁, 멕시코와의 전쟁, 노예제도를 둘러싼 남북전쟁, 1·2차 세계대전 등 끊임없는 도전속에서 오늘날 미국을 세계 유일의 초 강대국으로 만드는데 공헌했다. 그렇다고 역대 대통령들이 한결같이 위대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그중에서 수준 이하의 대통령도 많았다.
"미국 독립선언문의 기초자, 버지니아 종교자유법의 제안자, 그리고 버지니아대 창설자 토머스 제퍼슨, 여기 잠들다" 토머스 제퍼슨 3대 대통령의 묘비명이다. 본인 생전에 직접 썼다. 그는 대통령직 보다 미국 이념의 정점이라할 수 있는 독립선언문의 기초자로 미국인의 정신적 지주임을 더 자랑스러워 했다. 그는 비록 노예를 소유했지만 "노예제도는 도덕적 타락"이라는 입장을 유지하며 이 제도를 폐지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를 마련하려고 애를 썼다.
미국인들은 위대한 대통령으로 조지 워싱턴(초대), 토머스 제퍼슨(3대), 앤드류 잭슨(7대), 제임스 폴크(11대), 에이브러햄 링컨(16대), 우드로 윌슨(28대), 프랭클린 루스벨트(32대) 등 일곱명을 꼽는다. 워싱턴은 '포용력의 대통령', 제퍼슨은 '정부를 지킨 대통령', 잭슨은 '서민의 후원자', 폴크는 '미국의 토대를 마련한 대통령', 링컨은 '미국을 구한 대통령', 윌슨은 '대통령의 대통령', 루스벨트는 '두려움 없는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건국후 11명의 대통령을 만났다. 그런데도 여전히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 진영논리에 따라, 출신지에 따라 대통령의 채점표가 너무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비롯해 신사 윤보선, 산업화를 이뤘지만 독재정권이라는 오명을 쓴 박정희, 직업 공무원 최규하, 총으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보통사람을 자처했던 노태우, 문민정부 김영삼, 국민정부 김대중, 참여정부 노무현, 이명박 정부로 불리길 원했던 이명박, 그리고 박근혜에 이르기까지 평가는 제각각이다.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미증유의 사태로 박 대통령이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지지율이 10%대로 주저앉았다. 개인의 비극이지만 국가의 위기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자격'을 생각케 하는 깊고 깊은, 하지만 답답한 가을이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