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한국사회가 '神政사회'
샤머니즘 정권이었다니…
이들이 저지른 수많은 문제
명확히 밝히고 대가 치르게해야
국민호도한 자들 모두 책임 묻고
간과하지 않겠다는 각오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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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
판타지 장르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악한 캐릭터 중의 하나가 타인의 생명이나 기력을 갈취하는 캐릭터이다. 예를 들면 '뱀파이어'가 대표적이다. 이런 캐릭터는 마성적 세계를 다루는 작품에서 다양하게 변주된다. 흡혈의 화소는 동양에도 흔하다. 가까운 홍콩영화에서는 좀더 진전되어 유명한 홍콩영화 <동방불패>에서는 한국계 배우 임세관(임아행 역)이 인간의 생기를 순식간에 흡수해 버리는 충격적이고 끔찍한 '흡성대법'을 구사하기도 한다.

물론 구미호 같은 캐릭터는 특별하다. 미모의 구미호가 젊은 남자를 유혹하여 그 기력을 흡수한다는 화소는 동양적이면서도 매우 현대적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 캐릭터는 인간보다 여우에 집중되기 마련이어서 적당히 작은 동물을 잡아먹고 살면 되는 여우가 왜 인간을 탐하는가라는 질문이 더 중요하다. 당연히 여우는 인간이 되고자 인간을 탐하는 것이다. 금수로서 분수에 넘치는 인간을 욕망하는 여우는 더 나은 삶을 꿈꾸는 하층민의 욕망 위에 만들어진 것이고 이는 인간으로 표현되는 지배계층의 공포와 분노를 정당화한다.

그러나 21세기 생명력 착취 캐릭터에는 이유가 없다. 최근 20년 사이 전세계 최대 베스트셀러 '해리포터' 시리즈에는 이러한 흡혈의 상상력이 진화한 최고의 캐릭터 '디멘터'가 등장한다. 이는 물질, 실체에 국한되지 않은 현대의 생명관을 반영한다. '디멘터'는 보지도 못하고 감정이라고는 전혀 없으며 등장만으로 인간에게서 행복한 기억을 흡수하고 가장 나쁜 기억을 떠올리게 하며 나아가 영혼 자체를 빼앗는 사악한 존재이다. 무엇보다도 '디멘터'는 그렇게 인간에서 갈취해 간 행복이나 영혼으로 무엇을 하는지, 왜 그러는지 밝혀져 있지 않다.

2016년 한국사회가 신정(神政)사회, 이 정권이 샤머니즘 정권이었다는 사실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그러나 확신한다. 고조선에 있던 홍익인간이란 이념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은 탐욕이고 교만이며 교활함이다.

새로운 뉴스가 공표될 때마다 말 못하게 지치고 진 빠지고 좌절하고 그러다 다시 분노하고 울화통을 터뜨린다. 무한반복이다. 국민의 삶을 보지 못하고 국민의 삶을 공감할 줄 모르며 이제는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국민의 행복을 빼앗고 불행한 과거 역사를 떠올리게 하며 나아가 삶의 의욕, 삶의 이유조차 흔들리게 만든다. 심지어 최근에는 합리적인 사고의 훈련을 받았다는 사실에도 절망한다. 그럴 법하다는 것은 현대인의 사고에 중대한 기준이다. 그러나 그 합리적인 사고로 오늘의 한국정부를 납득할 수 없지 않은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세계,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세계에 직면하였다. 말 그대로 해리 앞에 나타난 디멘터와 같은 존재 아닌가.

그러고 보니 조짐이 드러난 것은 이미 1977년의 일이요, 전직 대통령이나 인척관계의 정치인, 전직 여당대표 등은 모두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금 분노하게 되는 것은 그런 일을 이미 알고 있는 자들이 그런 인물을 정계로 호출하고 이용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칠푼이'라고 에둘러 비난하는 데 그칠 일인가. 애초에 사교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인물인 줄 알았으면 그 같은 정보를 초장에 공개하여 국민으로 하여금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있게 했어야 옳은 일이었다. 꼭두각시 인형의 조종자가 자신들이 될 수 있다는 망상 하에 묵인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정명(正名)이 정도(正道)이다. 이것은 현재 이 나라 대통령의 문제이지 그 측근의 문제가 아니다. 아울러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고 극복하려면 이들이 저지른 수많은 문제를 명명백백 밝히고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할 것은 물론이며 자격 없는 자를 묵인하고 이를 이용해서 이러한 사태를 야기한 자, 국민을 호도한 자들 또한 모두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작품 속에서 '해리'가 '디멘터'를 퇴치한 '페트로눔'마법의 핵심은 자신감이었다. 이 자신감이 지금 우리 국민에게 필요하다. 이 사태를 절대 그대로 넘어가게 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가 살 길이다.

/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