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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월쉬 한국조지메이슨대 사무총장
우리는 서울시청역 안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내 아내와 나는 방금 막 지하철 2호선에서 내려 강남역으로 가는 길을 찾고 있었다.

우리는 그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우리가 원하는 장소로 바뀌는 마법과 같은 일이 일어나길 바랐지만, 시간은 흐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우연찮게도 어느 한 친절한 노신사에 의해 그 마법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는 꽤 노쇠해 보였지만 인자한 미소를 갖고 있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가 우리에게 말했다. 그리고 몇 분 뒤, 우리는 목적지로 가고 있었다. 늘어가는 좌절은 지난날 버지니아 여행에서 얻었던 지혜에 대한 의심과 함께 사라져 가고 있었고, 의심 또한 낯선 땅에서 낯선 이로 인해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 일은 2015년 3월에 일어났다. 이 일이 있기 전, 난 워싱턴 D.C 외곽 북버지니아에 있는 조지메이슨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었다.

그 친절한 노신사 이후로도 나와 내 아내는 친절한 한국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이 주저하지않고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곤 했다. 그들의 친절은 나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었다.

한 여자는 남편과 아이들을 잠시 두고 가까운 지하철역까지 우리를 태워다 주었다. 한 자전거 가게 주인은 내가 미국으로 돌아가기 한 달 이전부터 내 자전거를 무료로 검사해 주었다. 한 버스 운전기사는 우리가 잘못된 정거장에서 내리는 것을 막고 올바른 정류장으로 안내해 주었다.

이러한 일들은 계속되었다.

내가 한국 조지메이슨대학교에 온 지 세 번째 학기밖에 되지 않았지만, 가족 및 친구들과 미국에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노라면 내부인과 나는 늘 한국에서 사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이것은 아직 답하기 쉬운 질문이다. "따뜻하다", "편안하다", "매력있다"라는 말은 아직 우리가 쓰고 있는 말이다. 이 단어들은 단지 우리의 경험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겪은 외국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가 한국에 오고 난 후 21개월 동안 겪었던 일 중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다.

예를 들면, 난 아직도 음식을 고를 때 많이 망설인다. 나는 종종 너무 맵거나 단 음식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요즘은 도전해 보지 않은 음식들에 도전 중이다.

또 다른 경우는 운전이다. 국제운전면허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운전하기 꺼려진다. 주된 이유는 도로 신호들 때문이다. 현재 이 글을 쓰는 나는 아직 한국어 실력이 미숙한 상태다. 이곳 한국에서의 운전자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공격적이었다. 그들이 차선을 바꾸고 다른 운전자들 뒤에 곧바로 따라올 때면 그들은 두려울 것이 없어 보였다. 이후 난 처음으로 자동차 사고를 목격했고 그것은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시장 또한 나에게는 위협적이었다. 특히 주말의 남대문 시장과 광장시장은 꽤 나 매력적이긴 했으나 많이 붐볐다. 나는 그곳에서 나이 든 여자가 움직일 때면 옆으로 물러나 있어야 한다고 배웠다.

내가 좋아하는 현실 중 하나는 송도가 바로 자전거 타기에 좋은 도시라는 것이다. 아파트 건물 문 앞에서부터 나 있는 자전거 길로 우리가 원하는 곳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이곳에 온 지도 많은 시간이 지났다. 때때로 나는 미국이 아닌 다른 어느 곳에서 얼마나 머물든 간에 그곳에서 살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고, 그에 따른 내 대답은 "전혀 아니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렇다"로 나뉘었다. 하지만 내가 송도에 처음 온 후, 내 대답은 한 단계 더 나아갔다. 나는 긍정적으로 대답할 것이고 실제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우리는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도 집이 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서울에 있는 그 지하철역에서 노신사에게 받은 도움을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항상 이곳에 머물러있다.

/다니엘 월쉬 한국조지메이슨대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