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기획관
이홍범 인천시 재정기획관
중국 전국시대 말 진나라가 다른 제후국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되자 진나라의 무왕은 자만하기 시작한다. 이를 걱정한 한 신하가 '시경'(詩經)의 구절을 들어 충고의 말을 전한다. "신은 마음속으로 임금께서 제나라를 가볍게 알고 초나라를 업신여기며, 한나라를 속국 취급하는 것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시경'에 말하기를 '백 리를 가는 사람은 구십 리를 반으로 한다' 했습니다. 처음은 누구나 잘하지만 끝마무리를 잘하는 사람은 드문 법이니(靡不有初鮮克有終), 공께서는 이를 마음에 새기십시오." 이른바 '행백리자반어구십(行百里者半於九十)'의 어원이다.

지난 7월 민선 6기 2년을 정리하면서 인천시의 부채 감축 성과가 조명을 받은 바 있다. 재정 문제를 책임진 재정기획관으로서 13조 원이 넘던 시 본청과 공사·공단 부채를 약 2조 원가량 줄인 것은 누가 봐도 평가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 부채 감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것은 어쩐지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 복잡한 얘기를 하자면, 기업에서 쓰는 회계를 정부에 도입해서 쓰다 보니 계상되는 잠재적으로 갚아야 되는 돈(부채)까지 포함해서 2조원이다. 시가 직접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채무)은 3조2천억원 정도 되는데 아직 2천억 원도 못 갚았다. '시 재정 문제 빛이 보인다'고 보도가 나가니 은행빚 다 갚은 줄 아는 사람도 있는데 언감생심이다.

지금 시의 재정 문제 해결은 마무리 단계가 아니라 이제 막 시작을 한 단계다. 손을 놓은 채로 어쩌지 못하던 상황을 그래도 끝이 눈에 보이는 범위 내로 끌어다 놓은 정도다. 2년 동안 뭐했냐고 물어본다면 할 말은 없다. '쓰기는 쉬워도 벌기는 어렵다'는 가정경제의 흔한 명제로 대신 설명이 될는지 모르겠다.

정부라는 신체가 제 기능을 하려면 재정이라는 혈액이 온몸을 돌아다녀야 한다. 가끔 몸의 상태에 따라 혈압이 낮아지고 높아질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혈류량이 유지되어야 한다. 불필요한 움직임을 줄여 불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하는데 혈액이 안 쓰이도록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그 전에는 유례가 없었던 규모의 '외부수혈'을 많이 받았다. 민선 6기 들어 늘어난 교부세와 국비가 그 역할을 해주었다. 우리 시의 성과이고 자랑스런 일이지만 언제까지 이 정도의 외부수혈이 계속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세출 구조조정, 세입 루트 다변화 등 여러 가지 방법들이 지속적으로 친구처럼 동반자처럼 같이 가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시는 이번 3차 추가경정예산안 및 내년도 예산안에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지출을 담았다. 많이 갚아서 이제 좀 써도 되는 수준이라서가 아니라 재정 여력이 아직 없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동력을 최소한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고육책이다. 오랫동안 재정 고갈로 많은 사람이 필요한 지원을 못 받고 있고, 시 내부적으로도 일하는 동력을 많이 잃어버렸다. 신체가 움직이기 위해서 필요한 혈액이 있는데, 제때 공급이 되지 못해서 그냥 누워만 있는 상황을 피하고자 했다. 그런 와중에도 적정 수준으로 빚을 줄여나가는 '관리'는 계속될 것이다.

빚이 많을 땐 빚을 못 갚아서 무능하다는 욕을 먹다가, 성과가 나자 땅을 팔아서 빚 갚는 데 급급했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오해다. 땅을 판 돈은 아직 들어오지도 않았다. 대금이 들어오면 분명 재정 운영에 숨통이 조금 트일 것이다. 빚도 전보다 더 많이 갚을 것이다. 그때 들어야 될 욕을 지금 먹고 있다. 너무 빠르다. 이제 겨우 한 십 리쯤 왔다. 절반이 되려면 팔 십리를 더 가야 한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시차가 조금 있을 뿐 일반회계로 이관된 토지자산에 대한 대금은 순차적으로 특별회계로 이전되어 계획대로 쓰이는 데 문제가 없도록 할 것이다. 아니, 거기에 더해 특별회계의 설립 목적에 부합하는 국제도시의 면모를 갖춰나가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교통, 상권, 교육, 환경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명품도시로 만들 것이다. 경제자유구역은 인천의 미래이고, 인천은 절대 미래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홍범 인천시 재정기획관